현마는 길러준 단주의 배반에 벌렸던 입이 아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현마는 길러준 단주의 배반에 벌렸던 입이 아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6.01 14:06
  • 호수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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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87]

거리에서 굶주리고 헤매이는 것을 데려다가 길러 주고 사랑해준 미소년 ‘아도니스’의 반항인 것이다. 당초에는 아내 세란보다도 더 사랑해서 집에 데려다가 한 식구를 만들어 주었던 그 소년이 어느 결에 이렇게 거역하고 배반하게 된 것인가. 현마는 어이가 없어서 찬찬히 바라보면서 벌렸던 입이 아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괘씸하다고는 해도 나 어린 소년을 상대로 소리를 높이기도 어른답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었으나 괴변에 심중은 물론 안온하지 않았다.
“집을 나갈 때 나가드래두 세상에 이럴 법이 있나. 철부지라구는 해두 대체 무슨 턱을 잡구 이렇게 대드는 거야. 아무리 하치않어두 주인은 주인이 아닌가.”
“여러 말 말구 어서 미란을 찾아 내놔요. 제대로 맨들어 내놔요. 맨 첨의 순진하던 그때의 미란을 맨들어 내놔요.”
말이 미란의 일건에 이를 때 현마도 꼼짝하는 수 없었다. 아픈 상처에 손이 와 닿은 듯 저지른 허물의 생생한 흔적이 마음을 찔렀다. 노염으로 한다면 단주를 그 자리에서 매질이라도 하고 싶으나 미란을 거들고 대드는 데는 꼼짝하는 수 없었다.
“조르지 말구 더러 나서서 찾아보라는데두.”
“어서 미란을 찾아 내놔요. 두말 말구 미란을 찾아 내놔요.”
생떼같이 덤비는 데는 어쩌는 수 없이 한 수 꿀리는 현마였으나 그러나 하루 우연히도 기르던 개에게 참으로 다리를 물리운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노염에 정신이 착란되어서 단주에게 대한 마지막 단정을 내리고 무서운 철퇴를 던지게 되었다. 기르던 개에게 다리를 물리었다거나 하는 비유로는 부족하리만큼 현마에게는 무서운 사실의 발로였다. 단주로서는 현마에게 배은망덕을 했을 뿐이 아니요, 그를 몰아 패가망신케 한 셈이다. 원래 현마 자신이 그 음침한 푸른 집의 으늑한 분위기를 꾸며 놓은 괴수요, 근거였던 까닭에 어느 결엔지도 없이 이루어진 탕일한 풍습에 정신을 차릴 여유가 없었던지도 모른다. 등하불명으로 모르는 것은 남편인 현마뿐으로 되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관대한 부처님의 의용을 지니고 집안 사람들을 거느리고 탈 없이 다스려 왔다고――적어도 미란의 경우만을 빼놓고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 바위 같은 신념이 깨트려졌을 때 현마의 노염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고 정신이 착란되어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집안 사람 모두에게 무서운 증오와 복수를 느꼈다.
――현마와 단주가 미란의 종적에 대해서 근심하고 걱정하는데 비해서는 세란과 옥녀는 심드렁한 편이어서 남의 일보다도 자기 자신들의 일에 더 급급한 형편이었다. 옥녀는 개중에서 척분(戚分)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미란에게 대해서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세란의 편으로 본다면 동생의 일건에 그렇게까지 심드렁한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주책없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그의 주책없음은 단주를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심정이니 피서지에서 극도에 달했던 그 심정이 그대로 남아 집으로 온 후까지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열정이니 무어니 하기보다도 일종의 생리적 병증이었던지도 모른다. 산바람과 태양에 얼굴을 끄슬대로 끄슬었고 육신 마디마디에 산에서 받은 정기가 넘쳐서 원래가 야생의 여자인 세란은 푸른 집을 바로 별장 그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전에 없이 호담스럽고 대걸해져서 현마쯤은 손안의 노리개로 어려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게 되었다. 뜰에 나설 때에는 피서지의 뜰인 양 일광욕을 한다고는 웃통을 벗고 방안에서도 무더운 판에 눈에 남는 거동이 삐지 않았으며 그 맞장구를 치는 것이 단주여서 그도 벌써 산 속의 풍습에 젖은 후 허랑한 마음에 현마를 깔보기 시작한지가 오래였고 더구나 그와 사무실에서 미란의 일건으로 말다툼이 있은 후부터는 거역하는 마음에 일부러 현마의 눈에 거슬리는 거동도 꺼리지 않게 되어서 집안은 완연 세란과 단주 두 사람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방약무인의 태도가 현마에게보다도 옥녀에게 더 많이 영향을 주게 된 것이요, 현마의 태도가 관대한데 비해 옥녀의 신경은 곧추설 대로 서서 눈에 불심지가 솟고 속이 타면서 원망의 불길이 피어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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