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산책]햇빛 사냥
[디카시산책]햇빛 사냥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8.06.01 14:37
  • 호수 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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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사냥

살금 살금

발톱을 세우고 

저 싱싱한 아침 햇살을 낚아채야지

이상윤

**

아, 정말이지 저 초록이 되고 싶다. 저 초록처럼 나도 햇살 한 자락 낚아채 온 몸에 칭칭 감고 싶다. 그럼 나도 저 나무에 물오르듯 온통 진초록으로 덮일까. 죽었나 싶었던 나무가 살아있음을 저 손톱만한 초록으로 항변한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나는 다시 푸르게 뒤덮일 거야! 뽑아버리려던 순간 저 움켜쥐려는 욕망을 발견한 손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래, 그래야지. 나무가 나무인 것은 초록이 있기 때문이지. 언제든 저렇게 까마득한 어둠을 뚫고 환하게 다시 눈을 뜨는 초록이 있어서야. 그러니 나무야, 너는 절대 초록을 잃어버리면 안돼. 초록이었던 시절을 놓아버리면 안돼. 오직 초록에 의한, 초록을 위한 사명이 있음을 잊지 마. 네가 나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네가 낚고 싶은 저 아침 햇살은 수백년 동안 네 곁에서 너를 푸르게 물들일 거야.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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