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교육 특성화 수업…한글 익힌 어르신들 응용과정에 도전
문해교육 특성화 수업…한글 익힌 어르신들 응용과정에 도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6.08 10:48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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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DJ 되는 법 배우고 캘리그라피‧한자어교실서 특성화 수업
라디오DJ, 연극, 금융 교육 등과 결합한 '문예교육 특성화 수업'이 문해교육을 받는 어르신들의 실생활 속 한글 사용 능력을 높이고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관악FM 김보리 PD의 지도 아래 문해교육 수강 어르신들이 라디오DJ 교육을 받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라디오DJ, 연극, 금융 교육 등과 결합한 '문예교육 특성화 수업'이 문해교육을 받는 어르신들의 실생활 속 한글 사용 능력을 높이고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관악FM 김보리 PD의 지도 아래 문해교육 수강 어르신들이 라디오DJ 교육을 받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서울 관악구평생학습관 등 21개 기관서 진행… 연극‧금융교육 등 접목

한글 사용능력, 창의성 향상에 중점… 실습 위주 수업으로 흥미 높여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마이크 앞에 설 날이 벌써부터 기대돼요.”

지난 6월 4일 서울 관악구 ‘관악FM’에서 만난 남인순(78‧가명) 어르신은 라디오DJ 수업을 듣는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제때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남 어르신은 몇 해 전부터 관악구평생학습관에서 운영하는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어느 정도 글을 읽고 쓰는 게 가능해졌다. 남 어르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살아온 삶을 압축한 원고를 쓰고 이를 라디오를 통해 전파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 남 어르신은 “아직은 글을 쓰는 것이 버겁지만 라디오DJ로 나서서 한글을 익히며 배웠던 고마운 감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기존 교육 방식에서 탈피해 라디오DJ, 연극, 합창 등과 접목한 ‘문해교육 특성화 수업’이 창의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해교육 특성화 수업은 국가문해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순천시 등 10개 기관을 선정해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기존 교육 방식이 한글을 외우고 익히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실생활에서 활용하는데 약간의 장애가 있다는 점에 착안, 창의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둔다. 

순천시의 경우 문해교육기관인 순천시 찾아가는 문해교실을 통해 ‘캘리그라피(멋 글씨)를 활용한 손으로 그리는 글자교실’을 운영했는데 한글을 익힌 어르신들이 자신만의 손글씨를 만들고 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거나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문해학습자 맞춤형 캘리그라피 교재가 개발돼 전국에 배포됐고 참여 어르신들도 직접 쓴 캘리그라피를 모아 전시회를 여는 등 호평을 받았다. 이에 올해는 사업 기관을 21개로 확대해 5월부터 11월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시작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관악구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하는 ‘라디오로 나와 세상을 이야기하기’다. 어르신들이 직접 라디오 제작에 참여해 자신의 사연을 직접 쓰고 이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관악구평생학습관이 라디오DJ로 특성화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일반적인 교육과 달리 어르신들이 재미를 느끼고 동시에 라디오라는 매체가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종합적으로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문해교육의 취지와도 딱 맞았다. 또한 문해교육을 진행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이 이를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교육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이를 알려 문해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관악학습관에서는 먼저 100여명의 교육생 중 희망자 15명을 선발했다. 이후 독자적인 주파수를 가지고 관악구 관내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을미디어 ‘관악FM’과 손잡고 지난달부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2시간씩 10차례의 사전 교육을 마친 후 8월부터 라디오 방송에 투입될 예정이다. 

이날도 어르신들은 배우이자 DJ인 김보리 PD의 지도 아래 라디오 사연을 읽는 연습을 했다. 라디오 제작에 참여하려면 기초 이론부터 각종 장비 사용법까지 체계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로 인해 기존 교육방법은 한글이 아직 서툰 어르신들에겐 언감생심이나 다름없다. 이에 관악FM은 교육과정 자체를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게 설계했다. 라디오의 기초 이론을 알려주기보다는 라디오를 틈틈이 듣게 해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도록 했다. 또 복잡한 기계 사용법도 생략했다.

절차를 간소화한 대신 라디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연 작성과 낭독 연습에 교육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송인자(80‧가명) 어르신은 “받침 쓰는 게 어려워 포기할 뻔했지만 틀릴 때마다 친절하게 알려줘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문해교육이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자어교실을 운영하는 안양시민대학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안양시민대학은 문해교육을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으로 나눠 운영하고 있는데 중등과정의 경우 국어, 수학, 과학 등 5개 과목의 수업을 진행한다. 초등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읽고 말하기는 가능해졌지만, 문제는 생소한 한자어였다. 수학의 경우 소수‧분수 등 용어가, 국어의 경우 전치사‧목적어 등 한자어가 등장하는데 어르신들이 이에 대한 개념이 생소해 수업 진행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 

이에 안양시민대학은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해줄 한자어교실을 시작했고 어르신들의 반응도 뜨겁다.

안양시민대학 관계자는 “중등교육 과정을 순조롭게 이수하기 위해선 한자어의 개념과 의미를 꼭 익혀야 하지만 현재 초등과정에서 이를 해결하기는 어려웠다”면서 “한자어교실 특성화 수업을 통해 어르신들이 자신감 있게 중등 과정을 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금융교실과 접목한 광양평생학습관의 사례도 눈길을 끈다. 현재 금융계는 모바일 위주로 재편되고 있고 대출을 제외한 공과금 납부 등 대부분의 창구 서비스를 자동화기기로 옮기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어르신들이 은행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데 한글 사용이 서툰 문해교육 수강 어르신들은 이 고충이 더했다.

광양평생학습관 관계자는 “기존 문해교육과 달리 특성화 수업은 은행 자동화기기 이용 등 실습 위주로 진행해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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