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란은 온천에서 하던 버릇으로 물속에서 철벅거리면서 단주를 불렀다
세란은 온천에서 하던 버릇으로 물속에서 철벅거리면서 단주를 불렀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6.08 14:28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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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88]

그런 질투의 자격은 그가 단주와 관계를 맺었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은 물론이나 그렇게도 자기를 알뜰히 여기고 굳게 언약을 한 단주도 세란의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쓰고 옥녀 같은 것은 지릅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불만이 차차 커지면서 옥녀는 어느 결엔지 앙칼진 원망을 가슴속에 준비해 갔다. 나두 밸두 있구 입두 있다는 것, 여차직하면 가만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작은 가슴속에 겹겹으로 포개 넣고는 단주에게 대한 원망, 세란에게 대한 노염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알맞은 기회 아닌 바가 아니었으나 큰소리로는 떠들지 못할 단주와의 사이의 몸의 허물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참고 있었던 것이 한시도 견디기 어려운 세란의 충충댐으로 인해서 기회는 의외에도 빨라왔다. 세란은 단주에게서 끝끝내 항복은 못 받았어도 자기가 없었던 동안의 옥녀와의 사이를 민첩하게 눈치채고 옥녀에게 대한 미움은 날로 커가고 학대가 심해서 주제넘은 년, 넌 집안 일에 참견할 권리가 없다는 기세를 노골적으로 보여 옥녀의 반감을 사게 된 것이 드디어 심판의 날을 속히 잡아당긴 원인이었다. 오십보가 아니면 백보요 더 악할 것도 더 착할 것도 없이 한데 어울리게 된 집안 사람의 꼴들이란 흙탕물 속에서 진흙싸움을 하는 격이어서 선악을 가릴 수도 없고 흑백을 고를 수도 없는 혼란하고 불결한 정경이었다. 혼돈한 속에서는 시초라는 것도 없는 것이나 역시 세란의 교만이 화가 되어 그날 일이 터졌던 것은 사실이다. 옥녀에게 분부해서 다른 날 보다도 일찍이 목욕물을 끓여 놓고 세란은 온천에서 하던 버릇으로 더운물 속에서 철벅거리면서 오후를 조금 지났을 뿐이던 까닭에 현마가 속히 나오지는 않으리라는 예측도 있었고 다른 한편 옥녀에게 대한 시위운동도 겸할 요량으로 목욕실에서 단주를 불렀던 것이다. 단주 역시 미란이 없는 이제 세란 앞에서는 투정을 부릴 수가 없어서 대개는 뜻대로 쫓게 된 데다가 현마가 올 시간이 멀었다는 의식이 도와서 옥녀의 눈을 무릅쓰고 목욕실로 뛰어 들었다. 
정신없는 짓들이요 세상을 너무도 달게 여기고 얕잡아 보는 짓들이었다. 만사가 자기들만을 위해서 생겼다고 보는 데서 온 염치없는 수작들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비밀이란 조물주의 총애보다도 미움을 받고 있는 터에 비밀을 비밀로 여기지 않고 해뚱해뚱 날뛸 때 그 스스로 즐겨서 조물주의 미움을 사자는 것이요, 화를 부르자는 셈이다. 천벌은 즉시 두 사람을 내려쳤다. 아궁 앞에서 불을 살피면서 목욕실에서 장난치는 남녀의 목소리를 들으려니 옥녀는 피가 용솟음치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물이 금시 불로 변해서 두 몸을 태워 버렸으면도 원하고 창으로 번개가 기어들어 두 몸을 박살해 버렸으면도 저주하면서 불측한 남녀를 위해서 불행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원해서 그 자리로 무슨 짓이든지 할 것 같았다. 기도에는 목소리를 내어도 저주에는 목소리를 내는 법이 아니다. 참으로 옥녀는 목소리만이 없이 마음속으로 깊고 날카롭게 저주하는 것이었다. 그 뼈에 사무치는 저주가 통달했음일까. 일이 공교롭게 되었다느니 보다는 그의 저주의 공으로밖에는 돌릴 수 없는 것이 문득 뜰 안에 인기척을 듣게 된 것은 마침 눈을 감고 합장을 하고 한 참 저주에 열중해 있는 중이었다. 정신을 차리면서 열어젖힌 안방 창밖으로 뜰을 흘끗 바라보았을 때 조물주의 지시였던지 아직도 시간이 먼 현마의 자태가 나타난 것이 아니던가. 옥녀는 본능적으로 벌컥 겁을 먹으면서 자리를 일어섰다. 두 사람을 저주하던 그였지만 그 한순간만은 그들의 위험을 직각하면서 막아 주자는 본능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쏜살같이 부엌을 뛰어 뜰 안으로 나와 현마 앞에 막아선 것은 그런 본능적인 충동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음 순간 반성이 솟고 날카로운 증오가 복받쳐 오르지 않았던들 그는 그때까지 늘 해 오던 버릇대로 현마를 문밖에 따놓고 다른 데로 주의를 쏠리게 해서 잠깐 유예하는 동안에 날쌔게 서둘러 모든 것을 제대로 바로잡고 평화로운 상태로 돌려놓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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