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양귀비
아버지 가신 해부터 왔어
손마디 저려서 안 뽑았더니
해마다 똑같은 얼굴로 와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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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편의 디카시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무친다’는 말의 뜻을 이 디카시를 읽고 알게 된다. 허름한 담벼락이 살아생전 내 아버지가 견뎌 오신 삶인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려온다. 그래도 가끔은 저렇게 고운 빛으로 피었던 날들도 있었을 거라는 위로 앞에 손마디마저 저려와 얼마나 사무쳤을 것인가. ‘어버이 살아계실 적 섬기기란 다하여라’고 한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남는 것은 후회와 그리움뿐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요즘 팔순의 노모가 아흔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고 말씀하신다. 그때는 내가 그 마음을 몰랐는데 이제는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알겠단다. 외로워서 그랬는데 나는 그때 몰라서 미안하다고… 나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엄마가 외로워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라고 알아듣는다.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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