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페스트’ 공포와 선동 속에도 희망의 ‘봄’은 온다
연극 ‘페스트’ 공포와 선동 속에도 희망의 ‘봄’은 온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6.08 14:51
  • 호수 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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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원작… 격리된 섬 주민들의 전염병 극복 과정 담아

지중해에 위치한 평화로운 한 섬이 어느 날 발칵 뒤집힌다. 쥐들이 원인 모를 이유로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쥐들은 포대자루에 담아 계속 날라도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불어난다. 급기야 사람들까지 비슷한 증세의 열병을 앓다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 섬을 반으로 나눴고 양쪽 주민들은 서로 네 탓을 하며 갈등하기 시작한다. 이 지옥 같은 섬에는 다시 광명이 찾아들 수 있을까.

근현대 세계 문학의 거장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가 무대로 옮겨진다. 국내를 대표하는 박근형 연출가가 5년 만에 선보이는 국립극단 복귀작으로 6월 10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작품은 평온하던 섬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을 마을사람들의 연대와 희생을 통해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바람이 많이 부는 섬에서 근무하는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진찰실을 나서다 피를 토하고 죽어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한다. 쥐의 사체는 급격히 늘어가고 이상 증세는 주민들에게도 나타난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도지사는 섬을 고립시키라고 명령한다.

이런 상황에서 리유는 그의 협력자이자 말단 공무원 ‘조제프 그랑’, 기득권층 출신의 반항아 ‘장 타루’, 그리고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하는 파리 출신 신문기자 ‘레몽 랑베르’와 함께 사태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 질병이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는 ‘파늘루 신부’와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기는 ‘코타르’ 등에게 부딪혀 위기를 겪는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전염병’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신종 플루와 메르스 사태도 연상되지만 지난 대선을 휩쓸었던 ‘가짜뉴스’를 떠올리게도 한다. 한편으로는 좌우로 나뉘어 극렬한 색깔론을 벌이는 정치판이 생각나기도 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쓸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특히 극에선 원작에는 없는 장벽이 등장한다. 동과 서를 단절하는 장애물로 도지사는 페스트를 피해 장벽을 넘으려던 사람들을 사살한다. 또 페스트를 앓다 장벽 앞에서 죽은 정체불명의 여자를 보곤 페스트가 옆 도시에서 넘어왔다며 시민들을 선동한다. 또 장벽이 있으므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남북의 상황과 절묘하게 닮았다. 

작품 속에서 결국 갈등은 해결되고 사람들은 건강을 되찾는다. 리유 같은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인물의 희생이 바꿔놓은 결과다. 전염병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다. 언제든 형태를 바꿔 다시 유행하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다. 다만 인류가 수많은 전쟁과 전염병을 극복한 것처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희망은 존재한다. 남과 북이 대화국면으로 접어들었듯이 말이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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