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의 질문, 노년의 답!
세대의 질문, 노년의 답!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8.06.15 11:46
  • 호수 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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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하지 말고

천방하고 지축하자

기고만장 하지 말고

기고하고 만장하자

그게 노년 지혜의 자리일 것

“공부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열심히요”

“어떻게 하면 살을 빼지요?” “먹지마세요”

“코가 막히면 어떻게 하지요?” “푸세요”

이런 답을 들으려고 그렇게 용기를 내어 물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답은 요즘 청년들 쓰는 말대로 ‘디테일’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런 세세한 논리와 자세한 내용,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기술 바로 이런 것들을 알려달란 말이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론을 읊고 철학을 논하고 인생을 내세워 이말 저말로 답하지만 좀더 쉽고 이해가 잘 가는 설명을 듣고 싶다. 이 답 저 답을 살펴보다 혹시 그 답이 될성 싶은 말이 시로 있어 적어본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이 짧은 한 문장으로 우리는 삶을 고치고, 옷매무새를 바로잡는다. 요즘 애들 쓰는 말로 바꾸어보면 이렇게 풀어질까? 

막살고 나대고 폼 잡더니 꼴 좋다!

좋은 질문은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 좋은 답은 우리를 훨씬 더 오랫동안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한다. 위의 시조는 얼마 전 입적하신 오현스님의 임종계다. 세수로는 87세, 승랍으로는 60년이신 신흥사 오현 큰 스님의 글을 읽으며 좋은 질문과 좋은 답에 대해 생각해본다.

헛갈리는 것을 묻는 ‘질문’과 질문의 공란을 메워 지식의 빈자리를 채우는 ‘답변’도 세월을 입는다. 대개 젊어 질문은 천방지축이고, 중년 질문은 기고만장하며 세월이 지나도 허장성세인 경우가 많다. 아는 것을 짚는 확인 질문, 모르는 것을 묻는 지식 질문, 상대방을 떠보거나 욕보이기 위해 던지는 위선 질문에 이르기까지 질문은 모든 세대에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던져진다. 어떤 이는 늙어도 천방지축으로 답하고, 어떤 이는 나이 먹어도 기고만장한 답을 던지고, 어떤 이는 사는 세월 내내 허장성세로 답을 한다. 젊어도 보고 늙어도 본 우리 노년들에겐 어떤 질문과 어떤 답변이 좋을까? 모든 세대가 바라고 꿈꾸는 노년 그 지혜의 대화는 어떤 것일까? 

본래 천방지축(天方地軸)의 뜻은 천방이 하늘의 한 구석을 가리키는 말이고 지축이 지구자전의 중심축을 말할 텐데, 이 말이 합쳐지면 ‘어리석은 사람이 갈 바를 몰라 허둥대는 모습’을 지칭하게 되니 참 희안하다. 그런데 이게 그 말을 서로 떼어서 써보면, 지평을 넘어서 가야할 방향으로 손가락을 보이고(天方) 움직이지 않는 중심이 되어 세계를 돌아가게 하는 힘(地軸)이 된다. 어쩌면 노년의 질문은 그와 같았으면 한다. 한발만 떨어지면 가장 형편없는 것이 가장 값지게 만드는 과정이 되니 말이다. 노년의 답은 기고만장(氣高萬丈)이었으면 좋겠다. 기고(氣高)는 높이 숭상할만한 기운이고 만장(萬丈)은 길이가 만 길이나 되는 대단함을 말하니, 노년의 답이 그러하길 바란다. 그저 내용 없고 길기만하고(虛張) 명성과 위세(聲勢)만 집착하지 않는 대화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천방지축하고 기고만장하고 허장성세할 때 젊은이들은 우리를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난’ 세대도깨비처럼 볼지 모르겠다. 그러니 천방지축이 아니라 천방하고 지축하자. 기고만장이 아니라 기고하고 만장하자. 단어의 서로 떨어진 그 거리가 바로 배려의 공간이고, 공감의 자리이며, 세대를 위로하는 노년의 지혜의 자리이고 답의 자리가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세대는 숨을 쉬며 위로를 기다리고 잠시 앉아 삶의 지혜를 물처럼 서로 스미게 될 것이다. 천방하고 지축하는 시대의 지혜가 흐르고 기고하고 만장한 그 자리가 웃세대에 대한 존경의 외침이 울리는 진공관이 될 것이다. 흐르는 지혜를 맛보고 울리는 지혜를 들으며 젊은이들은 요즘 표현으로 기꺼이 외칠 것이다. 리스펙트(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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