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전, 여성에게 웨딩드레스란… 꿈‧설렘만이 아니었네
서울미술관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전, 여성에게 웨딩드레스란… 꿈‧설렘만이 아니었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6.15 13:41
  • 호수 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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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를 통해 여성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외 작가 26명의 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앙드레 김의 드레스
웨딩드레스를 통해 여성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외 작가 26명의 작품 100여점을 선보인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앙드레 김의 드레스

‘건축학개론’ 등 영화‧드라마 주인공에 맞는 드레스‧미술작품 함께 

앙드레 김 추모전도 열려… 스케치북·가위 등 소품과 드레스 공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여성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수백명의 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행진하는 그 때만큼은 누구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이를 더욱 빛내주는 것이 웨딩드레스다. 실제 결혼 준비 과정에서 여성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드레스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웨딩드레스를 찾기 위해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그 결과는 하객들의 찬사로 이어진다. 즉, 웨딩드레스 자체가 한 여성의 인생을 압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의 삶과 웨딩드레스를 접목한 전시가 열려 주목받고 있다. 화제의 전시는 서울미술관에서 오는 9월 16일까지 진행되는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 전이다. 작가 26명의 100여 작품을 통해 결혼의 낭만부터 상처와 억압, 욕망까지 여성의 삶을 풀어놓는다. 

이번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첫 번째 공간인 ‘12명의 신부 이야기’에서는 영화 ‘건축학개론’, ‘결혼은 미친짓이다’, 드라마 ‘또 오해영’ 등에 등장한 12명의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웨딩드레스를 소개하면서 이와 알맞은 미술작품들을 함께 소개한다. 

가령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을 모티브로 삼은 방에는 이혼의 상처가 있는 한 여인이 추억할 법한 웨딩드레스를 내걸고 그 옆에는 설치작품으로 유명한 송영욱의 ‘이방인(Stranger)’을 짝지었다. 작품에는 종이로 만든 나비들이 가득 달려 있는데, 마치 문이 열리는 순간 낯선 세계로 나아갈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드레스의 주인공 서연의 심리를 보여준다.   

최은영의 단편소설 ‘당신의 평화’ 속 주인공 유진을 모티브로 한 또 다른 방에는 드레스가 바닥 한켠에 널브러져 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란 30대 독신녀가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살아가야 할 결혼에 대해 보이는 냉소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 공간에는 대만 작가 황하이신의 회화 ‘레드 카펫 드림 #5’가 함께 한다. 화려한 색채와 유머러스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인공적인 메이크업, 인위적으로 연출된 사진, 억지웃음으로 점철된 집합적 군상으로 풍자하며 결혼식이 하나의 쇼 일뿐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대만작가 황 하이신의 '레드 카펫 드림 #5'
대만작가 황 하이신의 '레드 카펫 드림 #5'

이외에도 이사림, 김병관, 아뜰리에 마지, 크리스티나 마키바 등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이사림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로 전시에서는 신작 ‘해필리 에버 애프터’(Happily ever after)를 선보인다.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뿐인 소중한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결혼하는 커플의 행복한 모습을 작가 특유의 담백한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고전적인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결혼하는 이들의 찰나의 기쁨을 낭만적으로 보여준다. 

김병관은 대중문화의 유명 아이콘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소개하는 ‘Old Star#14’는 원조 원더우먼인 린다 카터를 내세운다. 작품에 등장하는 원더우먼은 실루엣은 유지되지만 얼굴 등의 신체부위는 뭉개져있다. 이는 과거 화려했던 이미지와 인물들이 환영의 이미지로 왜곡되며 사라지는 허망함을 보여준 것이다.

아뜰리에 마지의 작품은 여성들의 평범한 일상을 소재로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과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고된 집안일마저도 유쾌하게 표현한 ‘어느 날의 하루’(2018)에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러시아의 신예 작가 크리스티나 마키바는 세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감각적인 연출과 화려한 색감으로 담아낸다. 그녀의 작품은 모델의 자연스러운 포즈와 여성들의 로망과 욕망을 자극하는 드레스, 환상적인 배경이 절묘하게 어울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드레스를 입은 소녀’ 시리즈는 여행과 드레스를 좋아하는 작가가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움을 풍부하게 묘사하고자 시작됐다. 아름다운 풍경과 모델, 드레스가 어우러져 인간의 다양한 감성을 생동감 있게 연출해 감동을 주고 있다.

전시의 두 번째 공간은 한국 최초 남성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1935~2010)의 추모전으로 꾸며졌다. 우리나라 대표 디자이너로서 그가 생전에 아꼈던 웨딩드레스 컬렉션과 옷을 지을 때 썼던 스케치북·가위 등 소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공간 역시 ‘Show must go on by 앙드레 김’이라는 부제에 맞춰 런웨이처럼 마련됐다. 남녀 모델이 이마를 맞대며 사랑을 완성하는 앙드레 김 특유의 피날레를 연상시킨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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