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사기화병이 팔죽지에 맞고 떨어지자 단주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육중한 사기화병이 팔죽지에 맞고 떨어지자 단주도 그 자리에 쓰러졌다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6.22 14:46
  • 호수 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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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90]

“내 뜻으로 그렇게 된 건가. 거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한 거죠. 바른 정신이 없었어요. 모르는 결에 홀린 것같이 덤벙덤벙 들어가서는 꿈속을 헤매다 나오면 전신에 땀이 나구 정신이 혼몽해서 햇빛에 낯을 바로 쳐들 수 없게 눈이 부시구…….”
엄연한 현마의 앞에서 미소년 아도니스는 비로소 정신이 들면서 참회나 하는 듯이 웅얼거리나 현마의 귀에는 벌써 참회로 들리지도 않는 것이요 눈앞에 보이는 것은 미소년인 대신에 가장 추악하고 얄미운 족제비였던 것이다.
“짐승을 길러두 그렇게까지 배은망덕을 한 법은 없겠다. 어서 내 눈앞을 물러가라. 썩 물러가라.”
“잘했다는 것은 아니나…….”
“나가랄밖엔.”
“나가라면 나가죠만.”
그 한마디가 현마를 발끈 불질러 놓아 몸이 활짝 타오르는 바람에 손에 쥐는 것을 물인지 불인지도 헤아리지 않고 단주에게 던진 것이다. 팔죽지를 맞추고 떨어진 것은 화병이었다. 육중한 사기화병이 떨어지자 헤뜨러지는 꽃, 쏟아지는 물과 함께 단주도 흠! 소리를 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서 나가라니깐. 집을 더 더럽혀 놓지 말구 맘대로 나가. 도로 거지로 돌아가려무나.”
그러나 단주는 대꾸는새로에 금시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눈을 감고 팔죽지를 만지면서 신음하는 것은 꾀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짜장 화병에 맞은 팔죽지가 떨어질 듯이 쑤시면서 감각이 마비되어 버렸던 까닭이다. 금시에 피가 불어서 넘치는 것 같으면서 입을 벌릴 수도 없고 몸을 꼼짝달싹 요동할 수도 없었다.
“그대로 꺼꾸러지는 것이 너로선 옳은 신세다. 어서 꺼꾸러져라.”
그것쯤으로 현마의 화가 풀릴 리는 없어서 손에 잡히는 책을 집어 더욱 단주의 어깨를 갈길 때 안방에서 얼굴을 묻고 있던 세란도 그제서야 뛰어나오면서 쓰러진 단주의 꼴을 보고는 부끄럽던 심정도 사라지면서 현마를 노리는 것이었다.
“뭘 잘했다구 이 야단이오. 그럴 걸 누가 당초부터 집에 붙이랬나. 집에 들이지 않았다면야 누가…….”
“발악을 할려거든 지옥으로나 가 해라. 사람의 입이 보물은 보물야. 무슨 짓을 하구서래두 말구멍은 있거든.”
“사람을 집구석에만 버려 두구 밖에서 독판 숨어서 갖은 것을 다하면서 누구 죄란 말요. 아무리 여편네기로서니 쓸쓸할 때두 있겠구…….”
“시끄럽다. 모두 나가라니깐.”
눈앞에 선 것은 벌써 아내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요, 기름진 악마로도 보이고 요사스런 아귀로도 보였다. 눈에 충혈이 되고 손에 살기가 넘쳐서 책상 위에서 집어 든 것은 잉크병인 모양이었다.
“집에다 불을 놓아 버리기 전에 나가라니깐. 나가서 거지나 돼서 바가지나 긁으라니깐.”
세란은 면상을 얻어 맞고 흑! 느끼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한참이나 손으로 왼편 눈을 가리고 섰더니 그제서야 아이구! 소리를 치면서 현마에게 와락 달려든다.
“사람 죽이누나.”
여자가 대드는 것은 표범같이 사납다. 앙칼진 목소리에 현마는 한때 멍하니 서 있다가 전심을 쏠려 오는 세란의 몸을 받으면서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물러서기야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어쩔 줄을 모르고 팔을 벌리고 있는 동안에 별안간 면상이 뜨금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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