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어르신들의 랑데부 현장 르뽀] 한중 노인들 덩더쿵 덩덕 신명난 우정무대
[한국과 중국 어르신들의 랑데부 현장 르뽀] 한중 노인들 덩더쿵 덩덕 신명난 우정무대
  • 이미정
  • 승인 2008.03.28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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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중국 산동성 어르신 100여명이 서울을 찾았다. 서울시와 한국관광공사가 기획, 추진하고 있는 ‘한중노인교류사업’의 일환이다. 중국 어르신들은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한국 어르신들의 공연을 관람하고, 중국 전통문화를 선보이며 뜻 깊은 여정을 이어갔다. 한국과 중국 어르신들의 랑데부, 그 현장에서 양국 어르신들의 열정과 우정을 취재했다.

 

<사진>한국과 중국 어르신들이 공연을 끝내고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양국 어르신들의 우정무대 막 올라


중국 어르신 105명이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 2층 대강당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한국 어르신들이 우레 같은 박수로 이웃나라 친구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현동지려’(炫動之旅), ‘반짝반짝 빛나는 한국으로의 여행’이라는 뜻을 담은 한자어가 새겨진 빨간색 조끼와 모자를 쓴 중국 어르신들은 한국 어르신들의 환영이 쑥스러운 듯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흔들며 강당에 들어섰다.


서울시 산하 민간기업인 서울관광마케팅(주)과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한중노인교류사업’의 일환으로 3월 27일 배편을 이용, 중국 산동성 제남시 어르신들이 서울을 찾았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양국 어르신들의 문화교류 행사가 마련됐다. 외국 노인단체가 서울 관광 일정 중 2~3시간 가량 서울의 노인단체와 함께 양국 고유의 놀이, 문화, 노래 등을 선보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은평노인복지관 고재욱 관장은 “은평노인복지관은 하루 평균 1000~2000명의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서울에만 이 같은 복지관이 23개가 있다”면서 “한국정부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9.6%를 차지해 저출산고령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고, 특히 서울시는 노인행복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행사장으로 마련된 복지관 대강당이 비좁아 죄송하다”며 중국 어르신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서너 차례 사과와 양해를 구한 고 관장은 “문화교류를 통해 아시아권 어르신들이 하나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어르신들을 인솔한 마애군( 愛君) 산동국제여행사유한공사 부총경리는 “한국과 중국은 우호적인 관계에 있고, 두 나라 국민간 우정이 돈독하다”면서 “한국 어르신들도 산동성을 방문해 여가를 즐기며 두 나라 노인단체간 우정을 다지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그 즈음 은평구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행사장에 들어섰다. 예고 없이 양국 어르신들 앞에 선 이재오 의원은 선거를 의식했는지 “국회의원 후보가 아닌 한나라당 의원으로 (중국) 어르신들을 환영한다”면서 큰 절을 한 뒤 “부모가 아기를 낳고 기르는 비용과 70세 이상 어르신들의 노후생활 복지는 국가가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대표의 인사가 끝난 뒤 한국 측은 전통 다기와 떡을, 중국 측은 이 백의 시를 선물로 교환했다.

 

 

▶“덩더쿵, 덩덕”…문화를 나누고


어르신들의 공연이 시작됐다. 먼저 은평노인복지관 전통무예반에서 전통무용을 익힌 6명의 어르신들이 팔에는 한삼을 끼고, 곱디고운 궁중무 복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사회를 맡은 이 복지관 이지은 복지과장이 “어르신들의 평균연령이 73세”라고 소개하자 중국 어르신들은 놀랍다는 듯 탄성을 자아냈다. 한국 어르신들이 고운 물결을 이루듯 부드럽게 ‘화관무’를 선보이자 중국 어르신들은 머리 위로 카메라를 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이어진 공연은 풍물놀이. 모두 11명의 어르신들이 꽹과리와 장구 등 전통악기의 흥겨운 하모니를 선보이자 중국 어르신들의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공연에 한국 어르신들은 은평노인복지관에서 취미여가프로그램으로 매주 한 차례씩 연습하며 풍물놀이를 익혔다. 평균 연령은 71세.


풍물놀이 공연이 끝난 뒤 중국 어르신들이 한국의 문화를 배워보는 시간. 대여섯 명의 중국 어르신들이 무대에 올라 한국 어르신들과 함께 북채를 잡았다.


“쿵, 쿵, 덕, 덕…”


난생 처음 한국의 전통악기를 경험하는 중국 어르신들이 우리 가락을 흉내 내기란 무리였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얼굴 하나 가득 웃음이 넘쳐흘렀다. 이를 바라보던 객석의 양국 어르신들도 배꼽을 쥐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이어 중국 어르신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첫 공연으로 세 명의 어르신들이 하늘색 무용복을 입고 노란색 수건을 흔들며 ‘어촌마을 아가씨들’이란 공연을 선보였다. 어촌마을 아가씨들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그물을 짠다는 내용의 중국 전통춤이다. 이번에는 한국 어르신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중국 어르신들의 공연에 빠져 들었다.


두 번째 공연은 전통 노래. 중국 할머니 두 명이 무대에 올라 중국 전통가요를 불렀다. 중국 특유의 고음으로 빠르게 이어지는 노래는, 뜻은 알 수 없었으나 한국 어르신들의 호기심을 꼭 붙들어 잡기에 충분했다.


중국 어르신들의 마지막 공연으로 서예작품이 선보였다. 당나라 때 시를 썼다는 남자 어르신은 서 너 장의 한지에 정성들여 쓴 작품을 조심스럽게 펴보였다. 통역을 맡은 서울시립대 임 정 교수가 작품을 소개하는 어르신의 중국어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또 다른 중국 젊은이가 사투리를 표준어로 통역하고, 임 교수가 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작은 해프닝도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통역된 시는 ‘홀로 유황리에 앉아 가야금을 뜯는데 산 속에 사람이 있는 것도 모르고 밝은 달이 사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내용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중국 어르신들은 전통무용과 풍물놀이를 선보인 한국 어르신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양국 어르신들은 잊지 못할 경험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연신 벙긋벙긋 웃음을 놓지 않았다.


중국 어르신들은 이날 첫 일정으로 방문한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 이어 남산한옥마을을 비롯해 국립민속박물관, 청와대, 용산전쟁기념관 등을 관람하고 3월 29일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양국 어르신들의 공연을 지켜본 박용환(72) 어르신은 “말은 통하지 않지만 같은 노인끼리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 자체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은평노인복지관에 중국어반이 3개나 개설돼 많은 노인들이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 노인들이 안다면 매우 놀랍고 반가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중국 김종인(68) 어르신


“한국인들의 인상이 매우 부드럽고 마음씨도 따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는 처음 방문했다는 중국 김종인 어르신은 “한국에 김씨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는 은평노인복지관 어르신들이 중국어를 배운다는 이야기를 귀뜸하자 “너무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복지관의 규모와 시설 등 모든 면이 마음에 든다. 기회가 된다면 복지관 어르신들을 산동대학 노년대학에 초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산동대 노년대학에서 노래와 그림, 악기, 성악, 경극 등을 배우고 익히며 노후를 보낸다는 어르신은 “중국의 문화는 활기 넘치고 열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반면 한국의 문화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이 강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서울 방문을 통해 한국 노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게 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기회를 통해 더욱 깊이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김정희(79) 어르신


“민간외교관 된 듯해 가슴 뿌듯해”

 

한국 어르신들의 공연 가운데 풍물놀이 상쇄로 나섰던 김정희(여) 어르신은 “중국 노인들 앞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인 풍물놀이를 소개하게 돼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풍물놀이를 배운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김정희 어르신은 “수준 높은 기량보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한국노인의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진지한 얼굴로 꽹과리를 응시하는 중국 노인들의 눈빛을 확인한 순간 민간외교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잠깐이었지만 중국 노인들에게 우리 가락을 가르쳐주며 시간이 충분했다면 깊은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기회가 닿는다면 중국 산동성을 방문해 중국의 문화를 체험하고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어르신은 “정말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더욱 자주 이런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나타냈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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