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눈 감으면 불행…죽음 맞이할 시간 가져야 해”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눈 감으면 불행…죽음 맞이할 시간 가져야 해”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6.29 13:46
  • 호수 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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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기자]

32년 법의학 교수로 1000구 부검…“억울하게 죽은 사람 없도록 노력”

연명의료 결정 본인 의사가 일순위… 의향서 작성해도 변경·철회 가능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지난 2월 4일 사회적 논란 속에 법이 시행된 지 4개월째다. 그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쓴 이가 2만6417명(남 8957, 여 1만7460)이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이가 4697명(남 2967, 여 1730)이다(6월 3일 기준). 

이윤성(65)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을 만나 그간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물었다. 보건복지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재단법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생명윤리지원체계구축사업,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 평가인증사업,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 운영사업, 연명의료결정제도화 지원사업 등을 하며, 50여명의 직원이 을지로입구 동부빌딩 4,5층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설립 배경은.

“과학자의 발명·발견이 인간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인류가 뒤늦게 깨달았다. 예를 들어 체외수정(시험관아기)은 전 세계가 용인하고 있지만 복제양처럼 인간을 복제하는 건 막고 있다. 생명윤리 문제 때문이다. 1970년부터 국가마다 이에 관한 법을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일들을 전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이윤성 원장은 32년간의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지난 2월, 원장직을 맡았다. 이 원장은 최근 대통령 소속 제5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정책원이 하는 일은.

“연명의료를 하든지 말든지 그건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기준을 두지 않으면 의사나 환자, 환자 가족 사이에 천태만별의 일이 벌어진다. 그대로 방치하면 안 되니까 법을 만들었다. 연명의료를 결정할 즈음 환자 대부분은 의식이 없거나 의사표시를 못한다. 의사결정 능력이 있을 때 미리 밝힌 서식을 보관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얘긴가.

“그렇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두 가지가 있다. 의향서는 건강할 때에 장래를 대비해 미리 쓰는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작성한다. 예를 들어 의사는 말기 암 상태의 환자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해주고 연명의료를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환자의 결정을 기록한 것이 연명의료계획서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어디서 작성하나.

“건강보험공단 지사, 보건소, 일부 병원과 대한웰다잉협회 같은 시민단체에서 한다. 연명의료 정보포털(www. lst.go.kr)로 확인할 수 있다.”

-한때 많은 노인들이 의향서를 작성했는데.

“자기 삶의 마감과 관련된 일인데 아무데서나 서식을 다운 받아 쓴다면 많은 오해가 생길 수가 있다. 저도 2010년에 모 대학병원에서 의향서를 썼지만 지금 그 의향서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른다. 새로 다시 썼다.”

-대한노인회도 노인들로부터 의향서를 받을 수 있나.

“의향서는 교육을 받은 이로부터 설명을 듣고 작성하도록 돼 있다. 노인회가 그 일을 하려면 절차에 따라 등록을 하고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의향서를 작성한 환자가 마음이 변할 경우는.

“몇 번이고 철회나 변경이 가능하다.”

-환자 본인과 의사가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데 환자 가족이 요구하면.

“그런 경우가 가장 어렵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법은 본인의 의사 결정을 일순위로 두었다. 그런데도 가족들이 해 달라면 거절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거꾸로 환자는 연명의료를 해 달라는데 반해 가족들이 안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게 된다.”

이 원장은 최근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숨을 거둔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예를 들었다. 이 원장은 “구 회장은 마지막에 의식 불명이라 연명의료에 대해 본인의 의사를 물어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의향서도 쓰지 않았다”며 “구 회장은 평소 가족들에게 연명의료에 대한 거부감을 밝혔고 가족 2명의 일관된 진술에 따라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족의 범위는.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로 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많다. 직계존속에 부모, 할아버지·할머니,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 등 위로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젊은이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졌다. 한창 젊은 나이의 그가 평상시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혔을 리가 없다. 가족들이 모여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92세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법은 가족 전원으로 돼 있어 이 할머니의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이런 점이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현재 법 개정이 진행 중이다. 개정안은 배우자·부모·자식 등 1촌 이내로 하고 가족이 없으면 형제·자매가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한다.”

-2월 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된 후 접수 건수는.

“의향서는 2만6000여명, 계획서는 4600여명이다. 일년에 26만명이 사망하는데 그 중 연명의료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이 3만명 정도 되지 않을까 추정한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개인적 생각은.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기간을 갖고 죽는다. 그 과정에 마무리할 일들이 많다. 보고 싶은 이도 있고, 받을 돈도 갚아야 할 돈도 있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제가 의대생일 때 보면 말기암 환자에게는 의사들이 별로 해줄 것이 없고 잘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가족은 환자가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의사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의사도 딱히 그런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환자도 묻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의사가 지나가는 말로 ‘어제보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면 ‘내가 아직은 괜찮은가’ 하다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고 사망한다. 자기 삶을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건 불행이다. 마무리를 하고 눈을 감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법이 우리 국민의 죽음을 맞이하는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 원장은 이어 “4명 중 3명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갖고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삶을 마무리하는 문화가 잘 정립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 의사들은 설명 테크닉이 부족한 측면이 있어 정책원에서 의사들을 상대로 심화교육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책원은 강제성을 갖고 있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등록서류를 받아주고 병원에서 이런 경우 법이 어떻게 하라고 했나 유권해석을 내려달라면 거기에 답을 해준다.”

이 원장은 국방부 의문사 특별조사단 자문위원,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서울대 백남기사건특별조사위원장을 지냈다.

-30년 넘게 법의학자의 길을 걸었다. 시신 1000구를 부검했다고. 

“이한열·강경대 등 시국사건 부검, 이태원 햄버거 집 살인사건 부검에 관여했다.”

-법의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법의학 1세대’인 문국진 교수의 강의를 듣고 온 형님의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졌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이며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없어야겠다는 소신을 갖고 노력했다.” 

-어려운 점은.

“부검을 제대로 했지만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있다. 최근에 탤런트(김주혁)가 벤츠지프를 몰고 가다 사망했다. 뒤차의 블랙박스에서 보듯이 브레이크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다는 얘기다. 의식을 잃어 컨트롤을 못했던지 아무튼 사고의 원인을 부검으로 밝히지는 못 했다. 제가 한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 힘들다.”

이 원장은 인터뷰 끝으로 “의사들은 인공호흡기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살인죄로 기소될까 두려워 연명의료 중단을 주저한다. 의향서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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