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서 엿듣고만 있다가 싸움이 수월치 않음을 느끼고 뛰어든 것은…
현관 앞에서 엿듣고만 있다가 싸움이 수월치 않음을 느끼고 뛰어든 것은…
  • 글=이효석 그림=이두호 화백
  • 승인 2018.06.29 14:11
  • 호수 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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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장편소설 화분 [91]

 

엉겁결에 외치는 동안에 물리운 한편 볼에서는 검은 피가 쭉 돋았다. 잇자리가 몸을 찌를 듯이 아픈데다가 거머리같이 달라붙은 세란의 몸은 좀체 안 떨어진다.
“사람을 치구 받구 하구두 누구를 됩데. 살인이다. 사람 살려라.”
소리소리 지르며 밀려드는 바람에 현마는 한참이나 맞서다가 세란을 안은 채 뒤로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나둥그러지면서 눈에 띠인 것이 세란의 눈이다. 피가 흐르는 것은 자기의 볼만이 아니라 세란의 왼 눈시울도 시퍼렇게 멍이 든 속으로 검은 피가 쏟아지는 것이다.
“나가라면 무서워할 줄 알구. 나가구 말구. 얼른 사람이나 살려 내놔. 생사람을 저렇게 쳐서 쓰러뜨리구두 무엇이 부족해서…….”
한데 엉겨서 자리 위를 밀리는 동안에 현마는 여전히 쓰러진 채 일어날 염도 못하는 단주의 꼴을 흘끗 보게 되었다. 얼굴을 자리에 박은 채 침을 흘리고 신음하면서 처음에 쓰러진 그 시늉으로 꼼짝 안 하고 있다. 미소년 아도니스는 참으로 멧돼지에게 물려 벌판에 쓰러진 것인가. 그 피 흐른 자취에서 아네모네가 피어날 것인가――팔을 부러뜨리운 것일까, 거꾸러진 것일까――현마는 겁도 나서 자기의 상처도 잊어버리고 은연중에 그쪽으로 눈이 가고 주의가 쏠렸다. 그러나 몸을 뻗치고 손을 베풀 여가도 없이 발악을 하며 덮쳐 오는 세란에게 밀려서 한편 구석으로 쏠려가군 하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들볶이다가 다시 단주의 곁으로 쏠려 갔을 때 현마는 문득 그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본 것이다. 옥녀였다. 현관 앞에서 엿듣고만 있다가 싸움이 수월치 않음을 느끼고 뛰어든 옥녀였다. 쓰러진 단주 앞에 서서 그를 돌보아 줄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 자태였다.
“옥녀야 이년 너두 같은 년이지. 앙큼스럽게 고발은 왜 했어. 너 뉘 종이더냐. 단주의 손가락 하나래두 까딱 다쳤단 봐라.”
옥녀가 어느 때까지 망설이고 있는 것은 세란의 이 책망 때문인 듯도 했다. 현마는 세란의 입을 막으면서 옥녀에게 눈짓하고 일어서려는 것이었으나 지칠 대로 지쳐 맥이 풀리고 몸이 느른한 그들이었다. 싸우다 피차에 쓰러지고만 용과 범이었다. 흑백이 없고 옳고 그른 것이 없는 피장파장의 피곤한 두 개의 육체였던 것이다.
미란이 오래간만에 뜻을 먹고 사무실로 현마를 찾은 것은 자기의 여행에 대한 한 가지의 계책을 마지막으로 상의해 보려는 목적이었으나 붕대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는 그의 꼴을 보고 미상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란보다도 더 놀란 것이 현마였다. 오랫동안 종적을 감추어서 갖은 염려를 다 하게 하던 미란이 그렇게 다따가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하던 터이라 기쁜 마음이 울연히 솟았다. 놀라고 기쁘고 고마웠다. 찾아온 것 그것만으로 자기의 허물을 용서해 준다는 듯이도 보였던 것이다. 물론 지난 허물은 허물이 될 뿐 앞으로 그 이상 더 어떻게 되리라고는 원할 바 못 되었으나 그러나 마음만으로 한다면 미란은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이었고 한 송이의 절벽 위의 꽃으로 평생 그를 우러러보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에는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를 대할 수 있었고 그를 위해서는 아무런 희생을 해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조차 솟았다.
“가을이라구 벌써 붕대지짐인가요.”
농도 반가워서 현마는 그간 형편을 대충 귀띔해 주었다.
“집에선 큰 난리가 났었어. 결국 될 대로 되고 오는 데까지 왔다구 보면 그만이나 세란과 단주의 꼴들을 보구야 가만있을 수두 없어서 집을 떨어 버릴 작정으로 접전이 일어난 것이 상하긴 다 일반――나두 붕대를 감게 됐지만 저희들두 병원 맛을 보게 됐어. 단주는 팔을 꺾구 세란은 눈알을 깨트리구――무더운 병실에서들 아마두 나보다는 견디기 더 어려울걸.”
미란은 눈살이 찌푸려지고 속이 뉘엿거리면서도 그 역 올 것이 왔다고 느끼는 마음은 현마와 일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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