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걷고 조금 더 웃자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웃자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6.29 14:34
  • 호수 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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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건강정보로 홍수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의심이 생겨 병원에 가게 돼

건강에 관심 갖는 건 좋지만

지나친 염려증은 털어버려야

나는 손에 살집이 없다. 나이가 들어 그런 게 아니라 어려서부터 그랬다. 엄마친구 한분은 손등에 주사를 맞아 도독하게 만드셨다. 어린 맘에 손등이 봉긋해야 이쁜거로구나 생각은 했지만, 나무젓가락 같은 내 손이 싫지는 않았다. 

주름진 손등으로 눈이 갔다. 이제는 어려서부터 그렇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손이다. 마디가 굵어졌고 주름이 더욱 많아졌고 피부 밑으로 지나는 굵은 혈관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튀어나와 보인다. 그런데 참 신비롭다. 얇은 피부 밑으로 가느다란 관들이 복잡하게 연결이 되어있을 텐데 어찌 한 군데도 끊어짐 없이 정확하게 연결되어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나 싶다. 피를 실어 나르고, 산소를 운반하고, 영양분을 실어 나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감사하기까지 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온 몸의 메커니즘이 놀라울 따름이다.

수십 년을 말없이 기능하는 내 몸에 대하여 우리는 그저 무한 감사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도가 지나쳐 건강에 대한 관심이 거의 우상숭배 수준이다. 우선 건강정보가 너무 많다. 요리프로, 맛집 순방, 건강정보 등 TV 채널마다 관련 프로도 너무 많고 먹거리 프로그램이 경쟁하듯 나온다. 시청자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세계의 맛집 순방을 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맘껏 즐기는 유명인을 쳐다보며 대리 만족을 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식사를 하려면 나의 식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미디어는 좋다는 것은 다 챙겨 먹으라고 권한다. 여러 가지 베리 종류를 가지가지 소개하고 이름도 낯선 견과류도 가지가지 먹으란다. 해독주스, 해독스프뿐만 아니라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방법도 수백 가지를 말해준다. 솔깃해서 받아 적어 놓기도 하지만 선뜻 그 재료를 다 사다가 만들어 먹지는 않는다. SNS를 통해서 들어오는 건강에 관한 소식은 거의 스팸 수준이다. 건강에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처방이 많아 도대체 어떤 말이 맞는지 어지러울 정도이다. 정보가 홍수다.

모르는 새에 나도 예외 없이 그런 민감한 건강정보에 젖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전 직장에서의 일을 끝내고 모처럼 시간이 생겼는데도 생각보다 바쁜 일정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병원 저 병원 순례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이 바로 이 즈음이고, 게다가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여기저기 손볼 곳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가슴이 답답하고 체한 것 같은 증상으로 숨을 몰아쉬다가 이거 무슨 중대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일 년 전 출장길에서 이와 비슷한 증상이 있어 가던 길을 돌이켜 왔었던 것을 떠올리니 갑자기 두려웠다. 

‘여기가 이상해요. 저기도 이상해요’라고 말하는 내게 남편은 환갑이 가까우니 조금씩 고장 날 때도 되었다고 위로한다. 건강 수치들이 조금씩 올라가는 건 자연스런 이치이나 혹시나 해서 체크해 보자고 한다. 

병원에 가는 일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어렵게 예약을 해야 하고, 하루는 전문 의사를 만나 상담을 하며 몇 가지 검사를 해 보자고 지시를 받는다. 그리고 검사할 날짜를 따로 받아 검사하고, 그 결과를 보러 또 하루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한다. 요즘 종합병원은 새로운 제도로 인하여 전국에 있는 환자들로 붐벼 대형시장을 방불케 한다. 아무리 먼 곳에 사는 환자도 누구나 유명 병원의 유명 의사를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병원 안의 매장과 식당은 얼마나 잘되는지 모른다. 

그동안 아껴 모아둔 돈으로, 혹은 연금 받은 돈을 다 병원에 갖다 바친다고 불평하던 어느 분의 말이 실감났다. 초음파와 CT촬영, 운동부하 검사도 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주가 걸렸다. 사실 염려가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안달한들 초조해한들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검사결과를 보러 다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아주 아주 좋으십니다. 한 군데도 좁아진 곳은 없습니다. 원하시면 2년쯤 있다가 운동부하 검사나 한 번 해 봅시다.” 

완전 안심 판정을 받았다. 사실 ‘다시는 오실 필요 없어요’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날 우리는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맛있는 사골우거지탕을 사먹었다. 이제 건강 염려는 털어 버리고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웃기로 하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나뭇가지 같은 나의 주름진 손을 쳐다보았다. 얇은 피부 밑으로 튀어나온 혈관에 감사했다. 수고 많아요. 열심히 일해 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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