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여름을 슬기롭게 나는 방법
노인들이 여름을 슬기롭게 나는 방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13 11:31
  • 호수 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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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많은 비를 뿌린 장마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됐다.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기간이기도 하다. 기자의 특성상 야외 활동이 많은데 무더위는 최대 적이다. 겨울에는 여러 겹 껴입으면 그나마 버틸 만한데 한 여름에는 홀딱 벗고 돌아다닐 수 없는 노릇이어서 곤혹스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지자체들 역시 폭염에 대비해 발 빠른 대책들을 내놓는다.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전국 무더위쉼터 중 절반 이상을 경로당으로 지정하고 냉방비를 추가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라고나 할까. 공무원들의 노력은 종종 현실의 벽에 부딪히곤 한다. 냉방비를 아낌없이 지원해도 어르신들이 에어컨을 자주 켜지 않아 담당 공무원들이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
폭염 때 경로당을 방문했다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을 대신 켜줬다는 제보 아닌 제보를 빈번하게 듣는다. 자신이 돌아가면 바로 끈다는 말도 식상할 만큼 자주 곁들인다. 절약 정신이 몸에 배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이 달라졌다. 
어르신들은 에어컨이 없는 시대를 살아왔다. 선풍기만으로도 폭염을 견뎌냈다. 지금도 농촌에 에어컨 없이 사는 어르신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분들이 매년 열사병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여름을 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tvN ‘삼시세끼 바다목장편’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촬영지였던 전남 고흥군 득량도 주민들은 마을 중앙에 설치된 정자(亭子)에 모여 있었다. 큰 나무 때문에 그늘진 곳이라 그런 줄 알았다. 출연자 중 한 사람이 주민들에게 왜 이곳에 모여 있느냐고 물었고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다. 
“이곳이 바람이 가장 많이 분다.”
그랬다. 득량도 주민들은 마을에서 가장 시원한 곳에 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어 함께 여름을 극복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어르신들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득량도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이런 곳이 한 군데씩 있다. 열사병도 냉방병도 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름을 나는 것이다. 이런 지혜는 마을 차원에서 꼭 기록으로 남겨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냉방비를 줄이거나 에어컨을 설치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신 냉방기기의 장점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되 어르신들이 스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몇 해 전 경로당 취재 도중 왜 에어컨을 잘 안 켜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시 경로당 회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더우면 말 안 해도 알아서 켜요.”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만 지원해드리면 알아서 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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