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황금종려상 ‘어느 가족’ 혈연이 없지만 서로 보듬는 ‘대안가족’
칸 황금종려상 ‘어느 가족’ 혈연이 없지만 서로 보듬는 ‘대안가족’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13 13:33
  • 호수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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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질까지 하며 사는 식구 통해 가족의 의미 탐색

지난 5월 19일 국내 언론과 영화 관객들의 시선은 프랑스 칸에 집중됐다.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대상격인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막상 뚜껑을 열자 버닝은 무관에 그쳤다. 버닝을 누르고 수상의 영예를 안은 건 ‘만비키 가족’이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통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버닝을 누르고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만비키 가족’이 ‘어느 가족’으로 이름을 바꿔 7월 26일 개봉한다.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생계를 잇는 한 식구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는 작품이다.

작품은 평범한 부자(父子)로 보이는 ‘오사무’와 ‘쇼타’가 비장한 표정으로 동네마트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무언가 약속한 듯 비밀스런 눈길을 주고받던 이들은 이내 샴푸 등 생필품을 몰래 챙겨 마트를 빠져나온다. 능숙하게 전리품을 챙긴 두 사람은 성공을 자축하며 집으로 향한다.

골목을 지나던 오사무와 쇼타는 허름한 건물에서 쓰레기를 뒤지던 어린 소녀 ‘유리’를 발견한다. 본능적으로 남겨두고 가선 안 될 것 같다고 느낀 오사무는 이미 다섯 식구가 북적이며 지내 발 디딜 틈 없는 작은 집에 아이를 데려온다. 오사무의 아내로 보이는 ‘노부요’가 “밥만 먹이고 돌려보내라”며 핀잔을 주지만 결국 소녀는 세 사람뿐만 아니라 할머니 ‘하츠에’와 오사무의 여동생 ‘아키’와 함께 살게 된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마땅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오사무는 공사장에서, 노부오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고, 아키는 유사성행위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하츠에의 연금 덕분에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또 하나의 수입원이 있다면 오사무와 쇼타의 좀도둑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학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유리 역시 식구로 받아들인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늘 집안엔 웃음이 넘친다. 늦게 합류한 유리 역시 원래 가족이었던 것 마냥 녹아든다. 그러나 극이 전개되면서 곳곳에서 가족에 관한 수상한 점이 발견된다. 쇼타는 오사무와 노부요를 ‘아빠’,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 오사무와 노부오 역시 부부나 연인이라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위태롭던 가정에 사건이 하나둘 생겨나고 가족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면서 극의 긴장감도 높아진다.

이번 작품은 수상을 하고도 일본의 빈곤층 문제를 세계에 알렸다는 이유로 자국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작품 속 가족들은 사실 진짜 가족이 아니다.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원래 가족을 떠나 한 데 모인 일종의 대안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지만 서로의 상처를 잘 알기에 본 가족보다 더 잘 보듬어준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그들에게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품은 이 과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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