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 ‘개성공단’ 전, 폐쇄되기 전 개성공단 사람들 일상을 보는 듯
문화역서울284 ‘개성공단’ 전, 폐쇄되기 전 개성공단 사람들 일상을 보는 듯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13 13:36
  • 호수 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문체부 기획전… 개성공단 생산품, 북한 노동자에 지급되던 물품 등 재현

다방으로 공단 재현한 ‘로보물자’, 남북노동자 교류 담은 ‘피륙의 결’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지난 2016년 문을 닫은 개성공단을 주제로 한 전시가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임흥순 작가의 영상작품 ‘형제봉 가는 길’의 한 장면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지난 2016년 문을 닫은 개성공단을 주제로 한 전시가 서울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은 전시에 소개된 임흥순 작가의 영상작품 ‘형제봉 가는 길’의 한 장면

북한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봉동리에 위치한 공업지구. 경기 파주시 도라산역 넘어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6㎞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공단. 개성공단 이야기다. 2005년 가동을 시작해 수차례 우여곡절을 겪으며 10년 넘게 운영됐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광명성호 도발로 2016년  2월 10일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런 개성공단이 지난 7월 6일 문을 다시 열었다. 봉동리가 아닌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말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개성공단의 일상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오는 9월 2일까지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정정엽, 임흥순, 이부록, 김봉학프로덕션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해 개성공단 사람들을 기리는 작품을 선보인다. 개성공단을 설계했던 이들과 이곳에서 일해온 사람들, 섬유‧봉제‧의복‧신발 등 생산품, 그리고 개성공단에 입주한 126개 기업의 북한 근로자들의 출퇴근, 업간체조 등 하루 일과를 데이터와 시각이미지로 표현해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정정엽 작가의 ‘정상 출근’ 연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단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을 시폰(얇게 비치는 직물) 천에 먹으로 그려 천정에 드리워 겹치고 흔들리게 설치한 작품이다. 정 작가는 “북한을 비정상국가라고만 하는데 사람들이 정상 출근하는 국가라는 점을 설명하고 개성공단 노동자도 곧 정상 출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품명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오래된 거울들을 조합해 공단의 열린 문을 형상화한 또다른 작품 ‘개성공단의 문’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부록 작가의 ‘로보다방’은 북측 노동자에게 제공됐던 로보물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로보물자’는 로동보조물자의 준말이다. 북측 노동자에게 지급한 일종의 복지 물자를 일컫는 용어로, 초코파이‧봉지커피‧라면‧동태 등을 말한다. 다방 컨셉의 작품엔 개성공단을 상징하는 미싱 테이블이 있다. 잠정중단 조치 이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양측 협상가들이 마주할 협상테이블, 서울과 개성을 오고 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는 테이블을 상징한다. 또한 ‘품질은 타협이 없다’와 같은 남북측의 협의에 의해 결정된 생산표어들과 꽃문양이 합성된 자수 테이블보가 펼쳐져 개성공단이 어떻게 운영됐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수 작가의 사진작품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
유수 작가의 사진작품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

참여작가 중 유일하게 북한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유수 작가는 공단의 남측과 북측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도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의 밤’이라는 사진은 공단뿐 아니라 그 주변의 전경을 담담하게 전한다. ‘개성공단 선물’ 시리즈는 북측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담아 남측 노동자들에게 건넨 사물들과 그 이야기를 육성으로 기록해 보여준다. 

최원준 작가는 단편영화 ‘피륙의 결’로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피륙의 결은 천의 날실과 씨실이 만든 천의 흐름이라는 뜻의 옛 봉제용어로 두 주인공의 관계를 상징한다. 남한과 북한이 가진 근본적 동질성과 상생하는 한반도의 미래를 담고 있다.

수제 축구화 장인이자 북측 노동자에게 기술을 전수했던 김봉학의 일상을 담은 작품도 인상적이다. 김봉학프로덕션에서 마련한 이 작품은 남북의 문제, 노동과 정치적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는 작업장을 옮겨 놓았고 수제 축구화들이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개성공단이 운영될 당시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임흥순의 영상작품 ‘형제봉 가는 길’은 2016년 11월 23일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된 지 9개월이 지나 공단 기업 대표자들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진행했던 장례 퍼포먼스에 사용된 관, 만장 등 물품을 가지고 형제봉을 오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형제봉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봉우리이자 작가가 개인적으로 자주 올라 남북을 고민한 공간이기도 하다. 

유일한 외국작가인 제인 진 카이센(Jane Jin Kaisen)은 ‘하나의 또는 여러 산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작품으로 백두산을 담았다. 남북에서는 백두산이지만,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불리는 이 산을 주제로, 다양한 역사와 남한, 북한, 만주와 중국 등의 문화적 연결성을 전달한다.

이외에도 개성공단의 분양, 입주, 생산, 근로자 현황과 기업들의 매출액, 총자산 등이 수치로 표현된 그래프, 개성공단의 연혁, 행정서류로 읽는 공단의 일상들이 개성공단의 현재와 미래를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