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주제로 한 이색전시들… 햇살, 안개, 빗소리까지 예술로 승화시켜
날씨를 주제로 한 이색전시들… 햇살, 안개, 빗소리까지 예술로 승화시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20 14:29
  • 호수 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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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디뮤지엄 ‘Weather’ 전 시각‧청각‧촉각 등 오감을 활용한 다양한 설치작품 눈길

남서울생활미술관 ‘날씨의 맛’ 전 스펀지로 조각한 ‘버섯구름’, 재난 엮은 ‘무드’ 인상적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날씨와 관련된 두 개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Weather’ 전에 걸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마크 파의 ‘가르다 호’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날씨와 관련된 두 개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Weather’ 전에 걸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마크 파의 ‘가르다 호’

“오늘 날씨 참 예술이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누구나 한 번쯤은 내뱉었을 말이다. 혹은 햇볕이 쨍쨍 비추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을 때처럼 변화무쌍하게 날씨가 변할 때도 자조적으로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날씨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예술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날씨를 주제로 한 전시 두 개가 나란히 열려서 주목받고 있다. 화제의 전시는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오는 10월 28일까지 열리는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전(이하 ‘Weather’ 전)과 관악구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8월 15일까지 진행되는 ‘날씨의 맛’ 전이다.

먼저 ‘Weather’ 전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의 요소들 즉 해, 눈, 비, 안개, 뇌우 등을 매개로 작업해 온 26명 작가의 작품 170여 점을 통해 날씨가 어떻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예술이 될 수 있는지를 살핀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공간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공간인 ‘날씨가 말을 걸다’는 감정과 날씨 사이의 연결고리를 짚어간다. 다시 ‘햇살’, ‘눈, 비’ 그리고 ‘어둠’ 섹션으로 나눠지는데 각 위치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햇살’ 섹션엔 평범한 날들 속 특히 맑은 날들의 기억과 사소한 감정을 포착한 올리비아 비, 해변의 풍경을 유쾌한 시선으로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작가 마틴 파의 작품이 전시됐다. 환한 햇살이 전시장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에 절로 유쾌해진다. 

경쾌한 감정은 ‘눈, 비’ 섹션에서 다소 차분해진다. 요시노리 미즈타니가 구현한 풍경은 신비롭다. 여름 날 날벌레 유수리카가 흩날리는 모습을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이 포착해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예브게니아 아부게바의 작품은 포근하다. 북극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시선으로 기록했다. 

이어 ‘어둠’ 섹션은 순간 닥쳐오는 어둠에 놀라기도 하지만 이윽고 어둠이 주는 평온함, 고독감까지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앞서 ‘햇살’ 섹션에서 작품을 선보인 요시노리 미즈타는 이 섹션에서는 밝은 낮이 아니라 밤 시간대에 찍은 날벌레의 모습 또한 선보인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날벌레들의 모습은 포근하게 다가온다.

‘날씨의 맛’ 전에서 볼 수 있는 박여주의 ‘트와일라잇 존’.
‘날씨의 맛’ 전에서 볼 수 있는 박여주의 ‘트와일라잇 존’.

두 번째 공간 ‘날씨와 대화하다’는 시각‧청각‧촉각 등 오감을 활용해 날씨를 경험하는 공간이다. 세부적으로는 ‘파랑,’ ‘안개’, ‘빗소리’ 섹션으로 구성된다. ‘파랑’ 섹션에서는 날씨를 느낄 때 시각이 주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이은선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늘을 푸른색이라 생각하는데, 작가는 실제 1년 넘게 하늘을 촬영하면서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다른 푸른색 톤이 존재하는 걸 포착했다. 그리고 자신이 채집한 이 다양한 색을 재조합해 독특한 느낌의 하늘을 전시장에 펼쳐 놓았다. 맑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하는 날씨처럼. 안개 섹션은 신비로운 느낌이 가미된 공간이다. 실제로 전시장에 물리적으로 안개를 구현해 촉각으로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빗소리’ 섹션은 청각에 집중한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에 의지해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그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깜깜한 어둠뿐이다. 공간을 채운 건 오직 빗소리뿐이다. 사운드 디렉터 홍초선과 라온 레코드가 채집한 빗소리를 들으며 30m에 이르는 전시장을 걸으면서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지막 ‘날씨를 기억하다’에서는 작가의 개성에 따라 날씨가 기록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주변의 사물에 빛, 바람을 투영시켜 풍경을 기록하는 울리히 포글의 설치작품부터 매일 촬영한 사진에 같은 날의 세계적 이슈나 사건들을 손글씨로 기록한 야리 실로마키, 화면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중첩시켜 초현실적 장면을 연출한 김강희, 우수 어린 날씨와 작가의 시적 글귀를 기록하는 알렉스 웹 & 레베카 웹 부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날씨의 맛’ 전은 다양한 날씨 현상과 자연의 풍경을 살핀 ‘날씨를 맛보다’(정만영, 박여주, 바이런 킴, 김윤수)와 날씨의 다층적 면모를 주목한 ‘날씨에 맛을 더하다’(성유삼, 백정기, 임영주, 김형중·정화용)로 구성됐다.

대표적으로 김윤수는 바다에 비친 달빛과 파도 일렁임을 4초간 연차적으로 묘사한 드로잉을 달 평균 주기에 맞춰 30장씩 책으로 엮어냈다. 여러 권의 책은 달이 차오르는 형태와 같이 펼쳐진다. 죽음의 비를 스펀지로 조각한 성유삼의 ‘버섯구름’은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때문에 재앙과 같은 날씨 현상이 흔해진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임영주의 신작 영상 ‘무드’는 긴급 재난문자 수신음과 함께 ‘당신도 그렇습니까?’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며 폭염, 대설, 지진과 같은 재난과 관련된 개인의 기억을 더듬도록 유도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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