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영성순례에서의 체험
유럽 영성순례에서의 체험
  • 김동배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8.07.26 11:20
  • 호수 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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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유럽 영성공동체와 수도원

답사하는 뜻 깊은 여행 중

느닷없이 공황장애 재발

고통과 탈진 상태서 기도하다

절대자가 만지는 손길 느낀 듯

1년 전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공황장애를 앓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밤 이유 없는 불안과 초조, 호흡곤란, 폐쇄공포증 같은 것이 갑자기 나를 덮쳤다. 다음 날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니 자율신경계가 깨져 공황장애가 왔으나 약을 먹으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에게 흔한 질병이라 하였다. 몇 달 약을 먹어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약을 끊고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말 기독교 영성신학 교수가 인솔하는 유럽영성순례를 아내와 함께 가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내가 그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 여행은 신구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의미를 주는 테마여행이라고 생각하였다.   

일정은 파리에서 출발하여 주로 15〜16세기에 시작한 스페인의 영성공동체와 수도원을 답사하며 영성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11박의 여정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리옹의 라뚜레뜨 수도원,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며 설립된 떼제공동체, 천재 예술가 가우디가 설계하고 150년만에 완공할 바르셀로나의 성 가족성당, 톱니모양의 기암절벽 사이에 세운 몬세랏 수도원, 1000km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 콤포스텔라에서의 순례 체험 등을 하면서 강의와 관광, 예배와 기도가 적절히 조합된 매우 뜻깊은 여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아빌라의 테레사였다. 이냐시오 성인은 1491년에 로욜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기사로 성장해 전투에 나가 중상을 입은 후 병상에 누워 치료하는 동안 몇 개의 기독교 서적을 탐독하면서 깊은 회심을 하였다. 31세에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한 후 기도와 극기, 소박한 음식과 고행 끝에 영성학의 고전인 「영신수련」을 출판하였고 예수회를 창설하고 65세에 승천하였다.

기도의 스승 테레사 성녀는 1515년 아빌라에서 태어나 20세에 강생수녀원에 입회하였는데 22세부터 3년간 중병을 앓고 심지어 그녀는 죽었다고 여겨질 만큼 최악의 상태였다가 하나님의 재림을 체험하였다. 그 후 회심하여 67세까지 살면서 그의 제자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맨발의 갈멜 수도회를 창립하고 17개의 수도원을 건립하는 등 남성들도 하기 어려운 활동과 「영혼의 성」 등을 저술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그 두 분의 출생지와 활동지를 답사하는 동안 잊고 있었던 공황장애가 재발되었다. 아무 이유없이 극심한 불안감으로 안절부절 못하겠고, 아무리 심호흡을 해도 시원치 않아 연속적으로 심호흡을 해야 했다. 신경과민으로 밥도 못 먹겠고 잠도 잘 수 없었다. 내가 아는 단전호흡법이나 긴장이완요법을 시도하여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일주일을 이렇게 정신을 잃고 끌려 다니다 보니 아예 여행을 포기하고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한국에서 약을 제대로 준비해오지 못했는데 거기서는 진정제 같은 약은 의사처방 없이는 살 수 없단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요 고립무원이었다. 일행 중 약을 주기도 하고 기도를 해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었으나 다소 위로가 될 뿐 큰 도움은 못되었다. 아내는 나 이상으로 걱정하며 마사지를 하면서 위로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힘들게 죽는 과정을 생각하니 공포스러웠다. 

나는 문득 이냐시오와 테레사가 기독교 영성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것은 그들이 견디기 어려운 신체적 아픔을 통과하는 동안 회심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탈진상태에서 당하는 이 어려움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밤새 가뿐 호흡을 몰아쉬고 앉지도 눕지도 못하면서 침대 끄트머리에 머리를 파묻고 기도하는 동안 나를 만지시는 하나님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평생 받은 것이 많았는데 정작 내려놓은 것은 없었구나! 외양적으로 신앙생활은 잘 하는 듯 보였으나 이론적이었을 뿐 진정어린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를 못했구나! 그러나 하나님이 노년기에 접어드는 나에게 새 사명을 주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이런 확신이 들자 육신의 고통은 계속되었으나 영은 더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듯한 거룩한 각성이 일어남을 느꼈다. 그런 극심한 상황에서 만약 내가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어디에 호소하고 어떻게 그 고통의 의미를 깨달았을까? 

나는 3년 전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나의 은퇴생활은 즐겁고 보람되고 창의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다짐하였었다. 이번 여행은 신에 귀의하여 진심으로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귀한 순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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