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저승사자도 차별한다?
生과 死, 저승사자도 차별한다?
  • 강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 승인 2018.07.27 10:41
  • 호수 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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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명의들이 알려주는 건강정보 [72]

건강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부자일수록 오래 산다’는 점이다. 2013년 11월 초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 수준을 다섯 단계로 나눌 경우, 상위 20%에 속하는 남성들은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남성들보다 평균적으로 9.7세 오래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경우에는 상위 20%가 하위 20%에 비해 3.8세 오래 사는 것으로 조사되어, 남성에 비해서는 그 차이가 다소 적었다. 

사실 부자일수록 오래 산다는 결과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소득수준별 기대수명이나 사망률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고 그 결과는 지금과 유사하다. 소득이나 재산 외에 학력수준에 따라서도 기대여명과 사망률은 차이가 크며, 직업계층에 따라서도 차이가 명료하다. ‘저승사자도 차별한다’는 이야기는 씁쓸하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사회‧경제적 상태가 기대수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가’로 관심이 모아져 왔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매년 펴내는 ‘국민건강통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토대로 살펴보면 그 속에 답이 있다. 고소득층일수록 흡연과 과음을 덜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저소득층일수록 흡연과 과음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흡연과 과음을 하지 않는다면 오래 살 가능성은 분명히 높아진다.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은 금연을 해야 하는 필요성이나 자극을 덜 느낀다. 실제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금연 상담 프로그램의 효과는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했을 때보다도 월등히 낮다. 
또한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운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층은 아파도 병원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고소득층은 건강검진이나 암검진을 더 많이 받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나 스트레스, 우울감은 저소득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일한 질병을 앓더라도 사회‧경제적으로 나은 사람들은 더 높은 질의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린다. 저소득층 성인들은 건강습관을 잘 챙기지 않는데, 그들에게는 우선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운동을 하려 해도 여의치 않은데, 비용도 문제지만 저소득층 밀집지역에는 공원 및 체육시설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연구논문들 중에는 소득에 따른 기대수명의 차이 이유를 다른 곳에서 발견한 논문도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열악한 양육환경 속에서 자라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인지능력을 포함해 아동 발달에 있어서도 사회‧경제적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를 못받고 위험한 곳에 노출되기 때문에 생활 속 사고의 위험도 높으며,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지역은 안전시설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사고율이 높다. 

청소년의 경우에도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교통사고 사망이나 자살 사망의 차이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노인 자살 역시 삶의 희망을 잃은 저소득층 노인층에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 노년기에 걸쳐 사회‧경제적 상태에 따른 다양한 삶의 조건에서의 차이가 기대수명의 차이로 귀결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상황이 수명을 결정한다고 해서 숙명이나 운명이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가난 속에서도 장수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계 최고의 부자라던 사람들도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수명이 평균적으로 짧은 만큼 각종 정책에 있어 저소득층이 지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출처: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 발행 ‘굿닥터스’(맥스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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