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빈곤포르노는 이제 그만
시대착오적 빈곤포르노는 이제 그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7.27 10:44
  • 호수 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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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 한 국제구호단체의 공익광고를 오랜만에 접했다. 광고에서는 아프리카로 추정되는 한 마을에 먹지 못해 아사 직전까지 몰린 아이가 팔을 휘저을 힘도 없어 축 늘어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후원을 부탁했다. 당장이라도 지갑을 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러다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10년 전과 20년 전에도 같은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십수년 넘게 수많은 사람이 수십, 수백억원을 후원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굶주린 채 죽어가는 것이다. 그만큼 아프리카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면 구호단체가 무능한 거 아니야’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주변에 소액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자신은 아프리카에 후원하는 아들‧딸이 있다며 언젠가 그 아이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는 지인도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매달 보내는 돈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사용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종종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금액도 적었지만 구호단체가 잘 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선의는 때론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지난해 한 자선단체가 사람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성금 수십억원을 자신의 유흥비로 흥청망청 쓴 사건이 잇달아 발생해 한동안 기부를 꺼려하는 사람이 느는 등 신뢰에 큰 금이 갔다. 
구호단체가 적극적으로 자선사업을 펼쳐서 죽을 위기에 처한 수많은 아이들을 살려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구호단체들은 TV를 통해 여전히 아이들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내보낸다. 이를 두고 ‘빈곤포르노’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자극적인 장면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기 때문에 택한 전술이지만 이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면 구호단체가 돈을 빼먹거나 무능한 게 아닌가. 사람들이 보낸 성금을 주기적으로 공개하긴 하지만 두루뭉술해서 어디에 얼마나 쓰였는지도 모른다.
몇 해 전 유행했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국내에서 다시 재개됐다. 한 연예인이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요양병원 건립 모금을 위해 이를 제안하면서 유명인들이 얼음물 뒤집어쓰기 릴레이를 펼쳤다. 결국 한 달 만에 9억원이 모였고 토지 마련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21세기의 성금 모금은 이런 식으로 하는 거다. 
구호활동을 펼치는 단체가 지향하는 목표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호소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이 계좌를 채워줄 것이다. 성실히 성금을 집행하고 이를 여과 없이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TV에서 사라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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