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소리꾼
[디카시 산책]소리꾼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8.08.03 11:20
  • 호수 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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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매미 유충 땅 파고 나와

헌 몸 벗어놓고 소리 따라 가고 없다

뼛속까지 사무쳐야 명창에 이른다는데

여름 한 철 제 짝 찾는 소리로

세상은 한바탕 절절 끓어 넘치겠다

이기영 (시인, 디카시연구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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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7년간의 유충에서 벗어난 껍데기를 벗어놓고 날아가고 없다. 텅 빈 몸이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날 뿐이다. 맑고 크고 높은 소리를 내야만 짝을 찾고 마침내 제 소임을 다할 수 있는 매미는 연어처럼 짝짓기가 끝나면 죽는 생명체다.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이 죽고 땅속에 알을 낳자 암컷은 죽는다. 매미의 유충은 오롯이 땅속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고 그믐을 틈타 세상 밖으로 나와 딱 14일을 살고 죽는다. 오늘의 하루살이는 내일을 알 수 없고 여름철 매미는 가을을 알 수 없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유례없는 폭염으로 연일 최고치의 기온을 갈아치우면서 열사병으로 죽는 환자가 속출하는 요즈음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맹렬해지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내가 되어간다. 속수무책의 여름이 속이 꽉 찬 열매를 만드는 시간이라는 걸 잊지 말자.    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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