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교육청 정규직 전환으로 고령의 학교 당직기사들 일자리 잃을 판
전국 교육청 정규직 전환으로 고령의 학교 당직기사들 일자리 잃을 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8.10 10:41
  • 호수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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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부터 정규직 전환하면서 정년 65세로 못 박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70세 이상이 전체의 76%… 유예기간 2~3년 불과해 내쫓길 위기

당직기사들 “노인인력개발원이 주도하는 노인일자리로 전환을”

전국 교육청이 9월 1일부터 노인 근로자가 많은 학교 당직기사의 정규직 전환을 실시하지만 이로 인해 기존 근무자들이 정년에 막혀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한 당직기사가 야간에 외롭게 학교를 지키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국 교육청이 9월 1일부터 노인 근로자가 많은 학교 당직기사의 정규직 전환을 실시하지만 이로 인해 기존 근무자들이 정년에 막혀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한 당직기사가 야간에 외롭게 학교를 지키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모 초등학교에서 당직기사로 근무하는 60대 후반 김 모 씨는 지난달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서울교육청이 오는 9월부터 정규직 전환을 하는데 자신은 되레 3년 뒤 쫓겨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수년간 16시간을 꼼짝없이 학교에 갇히고도 6시간밖에 인정 못 받는 악조건 속에서 정부 노인일자리보다 급여가 많아 직고용만을 바라보며 버텼는데 뒤통수를 맞게 된 것이다. 김 씨는 “고용 안정을 믿었지만 돌아온 건 해고통지서나 다름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교육청을 비롯해 각 지방 교육청들이 그간 문제로 지적돼 왔던 학교 당직기사의 고용 안정을 위해 오는 9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정규직 전환에 나섰지만 현장 종사자의 바람과는 달리 정년을 65세로 못 박아 노인 당직기사들이 내쫓길 위기에 처했다. 뿐만 아니라 70대 전후 노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해 월 100만원 내외에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양질의 노인일자리란 평을 받았던 당직 업무에서 노인들이 사실상 배제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순차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5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기존 파견‧용역 형태로 학교에서 근무하던 당직·경비, 청소, 시설관리 종사자들을 교육공무직으로 전환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각 교육청은 이를 바탕으로 직고용 방안을 제시했고 공통적으로 용역업체와 계약이 끝난 오는 9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당직기사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예정이다. 각 교육청은 교육공무직 정년이 60세까지지만 고령자가 많은 당직기사의 경우 정년을 65세로 늘리고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유예기간을 뒀다. 

서울교육청의 경우 1600여명의 당직근로자를 포함 40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당직근로자는 나이에 따라 1~3년을 유예해줬다. 

문제는 1600여명의 당직근로자 가운데 65세 미만은 118명에 불과하고, 70세 이상이 1273명으로 전체의 76%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김 씨처럼 체력을 잘 유지해 70대 중반까지도 당직기사로 일하려던 사람들이 2~3년 내로 쫓겨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특히 당직 근로자들은 직접 고용에 따른 임금 인상 효과도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직고용으로 전환되면서 명절휴가비(연 최대 100만원), 맞춤형복지비(연 최대 45만원) 등 여러 가지 복지혜택이 주어지지만, 기존 시중노임단가(8500원) 대신 최저임금(7530원)을 적용하고 서울교육청이 용역업체에 지급하던 예산 수준에서 전환이 이뤄지기 때문에 근로여건이 크게 나아질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교육청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당직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시 2교대(격일근무)로 평일 6시간, 주말 9시간 일했을 때 월 근로시간은 104.5시간이 된다. 여기에 최저임금읍 곱하고 새로 책정된 급식비 6만5000원을 더했을 시 받게 되는 월급은 85만1880원이 된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교육청이 당직업무를 2교대를 전환하면서 적용했던 시중노임단가로 계산하면 88만8250원으로 3만원 가량 더 많이 받는다.

물론 명절휴가비와 맞춤형복지비를 더하면 더 많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육청은 유예기간이 지나도 학교장 재량에 따라 1년 단위로 계약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용 안정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당직근로자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유예계약기간 종료 후에도 계약직으로 전환해 건강에 이상이 없다면 원하는 만큼 근무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당직근로자들은 이에 대해서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15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전국학교당직기사협회 최승진 회장은 “당직 근로자들이 처우 개선을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한 가장 주된 이유가 계약에 관한 모든 권리를 학교장이 독점하고 횡포를 부린 것에 있었다”면서 “유예기간 종료 후 학교장 재량에 재계약을 맡기면 같은 상황이 반복됨으로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국학교당직기사협회는 장기적으로 당직업무를 정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주도하는 노인일자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리하게 60세 이상은 고용하지 못하는 교육공무직으로 전환하지 말고 노인일자리로 만들어 용역업체로 부당하게 흘러들어갔던 예산을 노인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올해 책정된 예산만 활용하더라도 2교대로 근무해도 120만원을 안정적으로 받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협회는 지난해 노인인력개발원과 손잡고 교육 교재를 만들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노인일자리 전환을 모색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당장 전환이 힘들더라도 노인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안정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고령 친화 일자리로 평가받는 당직근로자에 한해선 75세로 정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승진 회장은 “노인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 정책과 달리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오히려 노인일자리가 위축됐다”면서 “힘겹게 학교를 지켜온 노인들을 위해서 정년을 늘리는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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