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2)하바롭스크를 향하여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2)하바롭스크를 향하여
  • 문광수 오토바이 여행가
  • 승인 2018.08.10 11:19
  • 호수 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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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 시베리아 평원엔 들꽃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백세시대=문광수 오토바이 여행가]

하늘까지 곧게 뻗은 2차선 도로…어쩌다 라이더들 만나면 금세 친구 돼

마을 입구 숲속에 텐트… 하늘엔 쏟아질 듯 무수한 별, 공중엔 반딧불 향연

봄으로 접어든 시베리아 평원은 말 그대로 야생화 천국이다. 태곳적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들판에는 노랑·보라·주황·하양의 들꽃들이 그 땅의 주인인 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여행자는 숨도 고를 겸 멈춰 서서 들꽃 삼매경에 빠져든다.
봄으로 접어든 시베리아 평원은 말 그대로 야생화 천국이다. 태곳적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 들판에는 노랑·보라·주황·하양의 들꽃들이 그 땅의 주인인 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여행자는 숨도 고를 겸 멈춰 서서 들꽃 삼매경에 빠져든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토바이에 휘발유를 가득 채웠다.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시를 빠져나오면 곧 남시베리아가 펼쳐진다. 

아시아고속도로 60번 도로는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고속도로이다. 아스팔트 2차선 도로인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가 이렇게 달려보기는 처음이다. 두 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거의 직선 길을 하늘을 향하여 달린다. 추월하거나 추월당할 일도 없다. 유월 중순, 봄 같은 날씨로 인해 끝없는 대지에 들꽃이 만발하여 발길을 멈추게 한다. 

광야에 생존 환경이 같은 식물들이 모여 들꽃은 무리지어 피어 있다. 곳곳에 노랑·보라·주황색 꽃, 흰 꽃들이 끝없는 들판에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것. 태곳적부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버려진 땅, 이곳의 주인은 자연이다. ​

오늘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목표는 없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고 때로는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그들과 사진도 찍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 고속도로가 워낙 한가로워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오토바이 여행자는 반드시 멈춰 선다. 대부분 유럽에서 출발하거나 모스크바에서 온 사람들이다. 서로 지나온 길과 일정에 대해 정보교환을 하고 헤어진다. 

도로의 질은 우리나라 산업도로 수준에도 못 미친다. 포장상태는 우리나라 국도 2차선 수준. 길은 대부분 일직선으로 뻗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시베리아는 겨울이 혹독하게 추우므로 아스팔트가 얼고, 봄에 녹으며 파손이 심해 도로 보수공사가 많다. 이때 우회 도로를 만들어놓지 않아 공사 현장을 통과하는 불편이 있다. 그럼에도 이용자의 불편은 안중에 없다. 

고속도로에는 50km 정도 구간에 하나씩 카페가 있다. 대부분의 고객은 트럭 기사들이다. 1층은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파는 식당이고 2층은 여관이다. 식사는 스파게티와 비슷한 면 종류와 오징어 수프이고, 곳에 따라 빵, 밥, 양고기, 쇠고기 수프가 나온다. 음식량은 한국보다 적은 편이고 값은 4000~5000원 정도다. 우리나라 휴게소와 비교하면 안 된다. 규모도 식탁 열 개 정도고 이마저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항상 자리는 비어 있다. 

고속도로 좌우로 펼쳐진 숲과 들은 끝이 없다. 자작나무 숲뿐만 아니라 소나무 숲도 많이 만난다. 들꽃이 장관을 이루는 들판을 지나면 금세 습지의 늪이 펼쳐지기도 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는 비포장 길이다.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던 가난한 동네를 연상한다. 마을은 멀리 떨어져 있어 여행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여행자들은 마을 근처 숲속에 텐트를 치고 야영한다. 한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빛은 어릴 적 추억 속으로 이끌어간다.
여행자들은 마을 근처 숲속에 텐트를 치고 야영한다. 한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빛은 어릴 적 추억 속으로 이끌어간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옆 숲속에 텐트를 쳤다. 밤하늘은 어릴 적 고향에서 보던 무수히 많은 별들로 반짝인다. 별이 쏟아질 듯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오랜만에 보는 반딧불이 반짝이며 유희를 하는 것이 행복감을 더해준다. 풀벌레 소리와 숲속 요정의 숨소리마저 끊긴 적막한 밤이다. 

다음 날 아침 숲속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면 잠에서 깨어난다. 숲속의 잠은 상쾌한 아침을 맞이한다. 

긴 여정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150km를 달리는 동안 휴게소도 주유소도 없는 구간을 지나 하바롭스크 근교 꽃시장이 열리는 곳에서 하루 쉬게 되었다. 꽃시장은 봄을 만난 듯이 사람들이 많이 나와 꽃을 고르고 있다. 오토바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왔다. 미소로 다가와서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호기심어린 질문을 쏟아낸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다.

연해주는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의 사람들이 많다. 거부감 없이 악수하고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사람 사는 모습이 우리와 다를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서울, 코리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을 알고 이태원도 아는 사람이 우리말도 한마디 건넨다. 젊은이들은 ‘강남 스타일’을 첫 마디로 인사한다.

문광수 여행가
문광수 여행가

도시 호텔의 하룻밤 숙박료는 10만원 전후다. 호텔은 침대도 좋고 샤워나 부대시설이 좋으나 소도시로 찾아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여행자로서는 부담이다. 

하바롭스크 시내 한 호텔에서는 예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돌아서는데 마침 호텔 사장이 나타났다. “서울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자기가 서울을 몇 번 다녀왔다며 반갑게 맞는다. 그는 이태원과 인사동 등 다녀 본 곳을 자랑하며, 숙박료를 30% 할인까지 해서 좋은 방을 내주었다. 이렇듯 인연이란 소중한 것이고 서울의 위상이 세계적이라는 것에 자부심마저 느꼈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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