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좋아하는 사람들 ‘호모 호도스’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 ‘호모 호도스’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8.08.10 13:37
  • 호수 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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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그리스어로 길은 ‘호도스’인데

인생은 길을 걷는 것과 같아

산을 끝까지 오른 어르신들은

온갖 난관을 겪은 베테랑들

막 올라가는 사람들에 길 알려줘

가수 최희준씨가 불렀던 노래 ‘하숙생’의 가사 초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디 최희준씨의 노랫말 뿐이겠는가. 그리스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도 ‘모든 인간은 인생 길을 더듬어 찾아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은 언제부터 길이 되었을까?

‘길’ 하면 대부분 이동을 위한 통로를 떠올리겠지만, 교통수단으로서의 길도 있고, 방도를 뜻하는 길도 있고,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도 있다. ‘길게 나서’ 길이라고 했을 법하니, 우리의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이유는 아마도 세월을 길이에 삶의 방식을 더하고 옳고 그름의 기준도 있으며 그 방향과 사람의 걸음을 시간의 값으로 나누는 의미를 담고 있으리라.

길은 그리이스어로 호도스(ὁδός)라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할 때 ‘길’에 해당하는 말로, 성경에도 100번 이상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예수도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로드무비처럼 길을 따라가며 자신의 공생애를 살았고, 붓다 역시 1200명의 아라한 중 선발된 10명의 제자와 함께 45년의 긴 세월을 길을 다니며 삶과 도리를 가르쳤다. 마호메트나 공자 역시 제자들과 함께 길 위에서 지혜를 나누며 구도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길은 우리에게 따라야 할 도리이자, 함께 걸어야 할 지혜의 통로요 실천의 의미이기도 하다.

종교가 말하는 길은 깨달음의 길이자 동시에 사람의 길이다. 그리고 종교라는 거시적 길을 따라가는 사람의 미시적 길은 아이와 청년의 길, 중년과 노년의 길이 서로 다른 듯하다. 아이와 청년의 길은 성장을 위한 오르막길이라 어찌 갈까 싶으나 일단 출발하면 무성하고 힘이 넘쳐 경관 볼 새도 없이 정상을 향해 달음질 하고 가끔은 호기심에 길을 잃기도 한다. 중년의 길은 발자국으로 남은 길흔적을 넓히고 평지를 다듬어가는 신작로 같고, 꼭대기 너른 바위를 걷는 것 같아 짜릿하고 포효하는 기쁨에 이전 힘들었던 길과 달리 보암직하고 걸음직하다. 한편 노년의 길은 산마루 내려가는 좁아지고 넘어지기 쉬운 내리막 경사길 같다. 올라가고 포효하느라 이제 다리 힘도 풀리고 발은 무거워지며 올라가던 속도는 절반으로 떨어진다. 

막상 구도의 길은 느려지고 무거워진 이 길에서 시작된다. 늦어지며 주변을 보게 되고, 숨죽이며 안전을 감사하며,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보는 것도 이때다. 그리고 누군가 내려간 그 길을 걸어야 우리는 산행을 안전하게 마치게 되니, 안전과 회복의 생명족적은 오르막과 정상이 아니라 내리막길에 있다 할만하다. 그러니 내려오는 길을 만든 자들은 단연 베테랑들이다. 올라가는 길은 몇 번 오르다 말아버린 초보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박자박 발자국 그림이라면, 내려가는 길은 산을 끝까지 오른 자들의 안전한 복귀를 보여주는 성취 자국으로 채워진 퍼즐이리라. 

산을 내려오는 인생 베테랑들에게 우리는 길을 묻는다. ‘어떻게 올라가서 어찌 내려와야 합니까?’ 불안과 실패를 줄일 때도, 절경을 물을 때도, 안전을 물을 때도 그저 베테랑들이 최고다. 그리고 그가 베테랑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오랜 산행으로 낡았으나 그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등에 착 붙어있는 자글거리는 배낭, 흙에 묻고 누가봐도 여러 해 묶어낸 나달거리는 끈이 달린 밑창 닳은 등산화, 그리고 땀과 비에 수 십 번 흡습과 건조를 반복한 찌그러진 모자와 오른쪽 허리춤 손바닥만한 라디오! 

우리는 그들에게 길을 묻는다. 불안을 낮출 길, 실패를 줄일 길, 절정을 맞을 길, 안전을 도모할 길, 그리고 그 길을 다녀오는데 걸린 시간을 묻는다. 베테랑들의 답은 한결 같다. ‘금방이에요. 조만큼 가면 나와요. 가다가 모르겠으면 그 모퉁이에 휘어진 소나무만 찾으세요. 내려올 때 돌탑 오른쪽으로 와야 합니다. 그럼 걱정 없어요. 즐겁게 올라가세요.’ 만날 기약 없는 그들의 말은 늘 정답이다. 길을 잃을만하면 그곳에 소나무가 있고, 내려오는 길 돌탑 왼쪽이 낭떠러지라는 것도 알게 된다. 

요즘 애들은 길도 티맵이나 카카오내비 등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찾는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많이 배운 자녀들이 인생의 난관을 만날 때는 왜 포털이 아니라 나이든 혈육을 찾을까. 지도는 티맵이 잘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인생지도는 인간 내비게이션인 노인들, 산을 올라가 정상을 보고 산을 내려와 본 인생 베테랑들이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베테랑들이 좋다. 난 베테랑들을 존중한다. 이들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그 길과 길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길을 만든 베테랑들을 호모 호도스라고 하면 어떨까? 인생길을 걸어가며 새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 이름으로 호도스(好道s),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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