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1990년대식 사랑법, 현재도 유효할까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 1990년대식 사랑법, 현재도 유효할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8.10 13:51
  • 호수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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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영화 ‘약속’의 원작… 조폭 두목과 의사의 가슴 아픈 사랑

“당신께서 저한테 ‘니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게 가장 큰 죄입니다.”

지난 1998년 개봉해 큰 히트를 기록한 ‘약속’에 등장하는 명대사다. 극중 살인을 저지른 조폭 두목 공상두(박신양 분)가 사랑하는 연인이자 의사인 채희주(전도연 분)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고백할 때 한 대사로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명대사와 함께 ‘약속’이 20년 만에 돌아온다. 단, 극장이 아닌 대학로 무대에서 말이다.

‘약속’의 원작인 ‘돌아서서 떠나라’가 오는 9월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콘텐츠 그라운드에서 공연된다. ‘돌아서서 떠나라’는 ‘불 좀 꺼주세요’,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등을 통해 대학로 연극판을 이끌어온 이만희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그린 2인극이다. 1996년 연극으로 처음 올려져 이듬해 동아연극상 희곡상과 남녀주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품은 살인을 하고 자수하려는 공상두가 마지막으로 연인 채희주를 만나러 가서 벌어지는 하룻밤 이야기를 다룬다. 이를 통해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근본을 조명한다. 

무대는 경찰에 자수해 사형수가 된 상두와 수녀로 새 인생을 사는 희주가 면회를 오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무언가 사연이 많은 듯한 두 사람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서먹하게 대화를 나누다 오래 전 두 사람이 행복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출내기 여의사와 상처투성이 환자로 처음 만났던 두 사람은 평범하지 않은 연애를 시작하며 서로를 품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 간의 분쟁으로 상두가 돌연 자취를 감춘다. 2년 6개월간 연락도 없이 사라졌던 상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희주 앞에 불쑥 나타나 살인을 저질렀다면서 자수하겠다고 고백한다. 다시 올 긴 이별을 예감한 희주는 꿈만 같은 하루를 함께 보내고 두 사람만의 작은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이 끝난 이후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상두에게 희주는 “돌아서서 떠나라”고 말하며 막을 내린다. 

작품 속 두 사람은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아픔을 애써 누른 채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눈앞에 다가온 비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두 사람은 애초에 서로에게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가슴 아픈 일이 하나씩 늘어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 원망하거나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쉽게 만나고 이별을 반복하는 요새 트렌드와 달리 다소 오래된 사랑방식을 보여주지만 두 사람의 진지한 자세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작품을 지휘한 김지호 연출은 “작품의 ‘올드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어낼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감정의 과잉을 막고 여백을 줘서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만들어 사랑의 낭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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