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3)러시아 시골마을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3)러시아 시골마을
  •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08.17 14:24
  • 호수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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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피해 마을로… 손님 한 명 없는 슈퍼주인 반갑게 맞아

[백세시대=문광수]

아침, 저녁으론 손이 시릴 정도로 추위 엄습…비 흠뻑 맞으며 달리기도

송판을 세워 만든 울타리 안 텃밭엔 가족 먹을 만큼의 야채 가꾸는 듯

러시아 네르친스크 근교의 시골마을 전경. 식당도 공용화장실도 없는 이 마을은 집집마다 텃밭을 갖고 있다. 집의 울타리는 60년대 우리나라처럼 송판을 세워서 담장을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러시아 네르친스크 근교의 시골마을 전경. 식당도 공용화장실도 없는 이 마을은 집집마다 텃밭을 갖고 있다. 집의 울타리는 60년대 우리나라처럼 송판을 세워서 담장을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오토바이 여행이 ‘아웃도어의 극치’라고 하는 것은 온몸으로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바람과 비 그리고 먼지와 소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달리는 것이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동안 거의 매일 한 번씩 비를 맞는다. 아침에 화창한 날씨가 오후가 되면 숲과 습지에서 수증기가 올라가서 구름 띠를 형성하고 늦은 오후에는 기온이 점차 떨어지며 비를 한 차례 뿌린다. 

이것이 6월 하순 남시베리아의 전형적인 기후 패턴이다. 비가 많이 오거나 장시간 오는 것은 아니다. 30분 정도 소나기가 쏟아지고 곧 햇빛이 난다. 그래서 잠시 비를 피하면 되는데 허허벌판 장대한 대지 위에서 비를 피할 곳은 없다. 비를 맞고 달리면 젖은 옷이 어느새 마른다. 

오늘은 새벽녘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야영할 때 비를 만나면 큰 낭패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는 않다. 텐트 속에서 빗소리를 듣고 누워 있으면 퍽 낭만적이다. 이것은 야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하늘의 서사시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잔하고 있는 사이에 아침 햇살이 더욱 강하게 쏟아진다. 오늘도 뻐꾸기는 울기 시작한다. “뻐꾹~ 뻐꾹~.” 뻐꾸기 소리가 오늘따라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마고차(Magocha)에서 기분 좋게 출발하여 오전에 200km를​ 달렸다. 치타까지 600km를 하루에 가기는 무리다. 중간 어디에서 하룻밤을 쉬게 될지 모른다.

날씨는 더 추워졌다. 손이 시려서 아침, 저녁으로는 움츠려진다. 자작나무 숲은 사라지고 소나무 숲으로 풍광이 바뀌고 있다. 조금씩 멀리 민둥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초원이 펼쳐지는 몽골이 가깝다는 것일까? 방목하는 작은 목장도 보인다. 목장의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 산을 연상케 하는 풍경이다. 동네 앞 허술한 카페에 들려 수프를 시켰다. 큼직한 쇠고기 토막을 푸짐하게 넣었다. 구수한 맛이 시베리아에서 사 먹은 음식 중에 제일이다. 오후에는 느긋하게 150km 정도 가면 된다.  

민둥산 아래 펼쳐진 초원에는 방목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마치 미국 캘리포니아의 겨울산을 보는 듯했다.
민둥산 아래 펼쳐진 초원에는 방목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마치 미국 캘리포니아의 겨울산을 보는 듯했다.

오후에 볼 수 있는 짙은 구름 띠가 지평선과 대칭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냉기가 점점 더해 오더니 검은 구름이 덮쳐 오고 있다. 많은 비를 내릴 것 같다.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몰려오는 구름 띠를 뒤에 두고 마구 달린다. 

구름의 속도는 시속 120km는 되는 것 같다. 비구름을 따돌리는 듯하였으나 결국 잡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소나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많이 올 것 같다. 다급하게 시골마을 길로 들어섰다. 비포장 길이 험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소나기를 피해 마을 슈퍼마켓으로 들어가서 잠시 추위와 비를 피했다. 흙길에 소나기가 쏟아지며 풍기는 흙냄새는 어릴 때 시골에서 맡던 그 냄새이다. 흙냄새가 어딘들 다를 리 있겠는가? 기분이 나쁘지 않다.

마을 사람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슈퍼마켓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다 텅 비어 있는데 비를 피해 들어오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다. 상품도 잘 갖추어 시골 슈퍼마켓으로는 수준이 상당한 편이다. 이곳에서 사탕 한 봉지를 샀다. 그리고 한 청년을 만나 그의 안내로 동네 끝에 있는 호텔로 갔다. 가격도 1200루블(4만원 정도)로 저렴하다. ​침대와 화장실은 아주 깨끗하고 수준급이다. 

이 마을은 네르친스크 근교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이런 시골에는 공용 화장실이 없고 식당도 찾아볼 수 없다. 며칠 전 이런 시골에서 화장실을 찾다 없어서 결국 숲속에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작은 마을에 깨끗한 비즈니스호텔이 있는 것이 의아하다. 호텔 옆에 있는 주차장은 마치 교도소 철문처럼 높고 삼엄하다. 그리고 주차를 한 칸에 한 대씩 별도로 보관하고 자물쇠로 채워 보관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도난도 우려되지만 겨울 난방 때문에 이렇게 한다. 

개인 집의 울타리는 60년대 우리나라처럼 송판을 세워서 담장을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텃밭도 이렇게 송판으로 빙 둘러 울타리를 하고 있다. 나무가 흔해서 그런가? 집집마다 텃밭을 100~200평 정도 가지고 있다. 자기가 먹을 만큼만 작물을 가꾸나 보다.

그러나 광대한 대지는 버려져 있다. 농사짓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공장도 없다. 가끔 공장 같은 큰 건물이 보이는데 대부분 제재소이다. 시베리아는 임업 외에는 산업이 없어 보인다. 천지가 땅인데 농사가 안 되는 것은 일조량이 적고, 농로와 수로 등 인프라가 전혀 없어서다. 농업자본의 부재라 할 수 있다. 이곳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채소를 재배하면 대박일 것 같다. 이곳은 노동력과 연료비도 저렴한데 농업 기술력이 문제다. 그래서인지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투자요청을 계속하고 있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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