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40년 가까이 한국인의 의식과 죽음 연구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40년 가까이 한국인의 의식과 죽음 연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8.24 11:01
  • 호수 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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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중요… 육성녹음·영상 장례식장에서 틀어주길”

[백세시대=오현주기자]

40여년 죽음 연구… “잘 죽는 건 주변 정리 잘하고 가는 것”

한국인들 장례는 허례허식 많아… LG 구본무 회장은 귀감

40년 가까이 한국인의 의식과 죽음을 연구해온 최준식(63)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가 최근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임종학 강의’(김영사)란 책을 펴냈다. 최 교수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는 몇 안 되는 죽음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죽음학회를 10여년 이끌고 있다. 최 교수는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삶을 품위 있게 마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임종을 어떻게 준비해야 이번 생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느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만나 잘 죽는 법과 사후세계에 대해 들었다.

-잘 죽는 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저는 최근 5년 사이에 부모들을 다 여위었다. 제 부모와 처의 부모까지 네분이 모두 타계했다. 네분의 임종과 장례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3일간의 장례절차가 아니라 임종 직전 그분들이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가 전화벨만 울리면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일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분들과 사별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남겨진 사람은 물론 임종 당사자들이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떤 것이 인간답게 잘 죽는 법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잘 정리하고 가는 것이다. 유산 같은 물질적인 걸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가졌던 원망, 원한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잘 풀어내고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이별한 뒤라야 제대로 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웰다잉에 꼭 필요한 준비물은 무언가.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다.”

-유언장은 어떻게 작성하나.

“부모의 임종 전후로 생길 수 있는 가장 큰 혼란은 자식들 간의 유산 상속 분쟁일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상속 문제를 유언장에 쓸 필요도 없이 생존 시 매듭을 지어 놓는 것이다. 유언장에는 민법 제1066조에 따라 이름·주소·날짜·내용·날인(엄지손가락으로 지장을 찍어도 된다)등 5가지가 꼭 들어가야 한다.”

-내용은 뭐라고 적나.

“자신이 원하는 임종 장소-집인지, 병원인지-를 적고 어디에 묻히고 싶은가를 밝힌다. 장기·시신 기증 여부, 시신처리와 장례식에 대한 내용도 들어가면 좋다.”

-장례식도 중요하다.

“장례식에 초청하고 싶은 사람들을 직접 선정하고 식순을 스스로 짜는 것도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조사(弔辭)는 누구에게 부탁하고 조가(弔歌)는 누가 어떤 노래를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끝으로 중요한 건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녹음 내지 녹화를 해두는 것이다.”

-어떤 내용이 좋은가.

“우선 자신이 한평생 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았고 주위로부터 어떤 은덕을 입었는지 밝힌다. 신세진 분들에게 세세히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잘못한 분들에게는 진실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게 좋다. 이런 내용들을 영상으로 담아 장례식 당일에 마지막 순서로 보여준다면 정말 훈훈한 의례가 되지 않을까.”

-한 재벌 회장의 수목장이 화제였다.

“그렇다. 존엄한 임종과 관련해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좋은 귀감이 됐다. 한국인들의 임종과 장례는 비합리적이고 허례에 치우친 일들이 많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거나 허례허식에 빠진 장례식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구 회장은 보기 드물게 모범생으로 마쳤다. 그는 우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부고장도 합리적이다. 구회장의 부고를 보면 ‘화담 능성 구공 본무께서 별세하셨기에’로 시작된다. 이는 고인의 격식에 맞게 썼다. 저는 지금껏 고인의 이름을 이렇게 쓴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호(화담)를 맨 먼저, 그리고 본관(능성)을, 그 다음에 성을 쓰고 ‘공’자를 넣고 이름만 쓰는 것 이게 정식이다. 마지막으로 장례식장에 사람을 부르지 않았고 조화를 받지 않았고 화장과 수목장으로 마무리했다. 앞으로 임종이나 장례에서 구 회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쓸 필요가 있다.

“의향서는 본인을 위해 쓰는 것이다. 말기 질환 상태에 들어간 본인이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을 때 자신이 받고 싶은 치료와 그렇지 않은 치료를 사전에 문서로 밝히는 것이다. 의향서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을 통해 본인이 작성해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보내 보관해야 한다. 의향서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말인가.

“의향서는 개인적인 문제이다. 본인이 스스로 작성해 가지고 있다 필요한 때에 병원에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기관(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의지하려고 한다. 의향서를 써놓았다가도 마지막 순간에 연명치료를 받겠다고 하면 그 의견 역시 존중해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도 써야 한다고.

“의향서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쓸 수 있지만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질환이나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가 의사와 같이 쓰는 문서이다. 내용은 의향서와 거의 비슷하다.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지, 혹은 호스피스 의료를 이용할지 등에 대한 의견이 포함된다. 의향서를 써 놓았다면 굳이 계획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

-존엄한 죽음에 또 필요한 것은 무언가. 

“임종실이 있어야 한다. 임종실은 환자의 임종이 임박했을 때 환자와 가족들이 들어가서 죽음을 준비하는 방이다. 다른 환자나 가족이 없는 방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폐를 끼칠 필요 없고 마음대로 성가를 불러도 되고 염불을 욀 수도 있으니까.”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임종학 강의’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할 임종학 강의’

최준식 교수는 서강대 사학과를 나와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0여년 전 한국죽음학회를 만들어 죽음과 무의식, 전생, 사후세계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해 연구했다. 2013년 한국문화와 예술 그리고 종교 및 죽음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한국문화중심’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제자를 양성 중이다.  

-한국죽음학회의 성과라면.

“죽음학회의 목적 역시 잘 죽는 법을 연구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죽음을 공부하는 분위기가 돼 있지 않아 창립 목적이 무색할 정도로 그간 학회의 성적이 초라하다.”

-노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피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임종을 눈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같은 질문들을 통해 비로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성장의 기회’다. 해외여행 가는데도 준비를 하는데 중요한 죽음에 대해선 준비를 하지 않는다. 책을 통해 공부하고 성찰하고 자기만의 철학을 지녔을 때 이승을 떠나는 순간이 두렵지 않다. 책 보기가 힘들다면 죽음과 관련한 다양한 다큐멘터리 보기를 권한다. 유튜브에 많다.” 

-사후 세계를 믿는가. 

“사후 세계의 문제는 앎의 문제이지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사후 세계는 이승의 연장이다. 사후 세계를 알면 여기서의 삶이 달라진다. 수년 전 미국의 뇌 과학자 이븐 알렉산더가 뇌 바이러스 감염으로 7일간 뇌사상태에 빠졌다 깨어난 후 ‘나는 천국을 보았다’(김영사)란 책을 썼다. 그런 책들을 비롯해 ‘사후생’(퀴블리 로스), ‘한국 사자의 서’(최준식) 같은 책을 보기를 권한다.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죽음은 여러 가지 제약으로 작용했던 육체를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것이니 오히려 축하할 일이 아닐까.” 

최 교수는 좋은 죽음을 맞으려면 자서전을 쓰는 것도 권할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부모의 자서전을 써보라고 하자 뜻밖의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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