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과 占
이순신 장군과 占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8.24 11:11
  • 호수 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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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임하기 전 척사점(윷점) 보기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다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다. 이순신 장군이 점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점뿐만이 아니라 꿈도 소중히 여겼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나가기 전 점을 쳤다. 이런 식이다. 

“새벽에 촛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왜적을 칠 일이 길한지 점을 쳤다. 첫 점은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것이었고 다시 점을 치니 ‘산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였다. 흉도(胸島) 안바다에 진을 치고서 잤다.”-1594년 9월 28일

이순신 장군은 부인과 아들의 병세에 관해서도 점을 쳤다.

“이른 아침에 손을 씻고 조용히 앉아 아내의 병세를 점쳐보니 ‘중이 속세에 돌아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시 쳤더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매우 길하다. 또 병세가 나아질 것인지와 어떤 소식이 올지를 점쳤더니 ‘귀양 땅에서 친척을 만난 것과 같다’는 괘를 얻었다. 이 역시 오늘 중에 좋은 소식을 들을 징조였다.” -1594년 9월 1일

아들 면(葂)과 영의정 류성룡의 병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괘가 나왔다.

“비가 계속 내렸다. 홀로 앉아 아들 면의 병세가 어떠한지 염려되어 글자를 짚어 점을 쳐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다시 짚어보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두 괘가 모두 길하여 마음이 조금 놓였다. 류 상(류성룡)의 점을 쳐보니 ‘바다에서 배를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또 다시 점치니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다. 매우 길한 것이다”-1594년 7월 13일

이순신 장군이 친 점을 척자점(擲字占·일명 윷점)이라고 한다. 척자점은 도, 개, 걸, 윷에 각각 1, 2, 3, 4를 붙이고 윷을 세 번 던져서 나온 숫자를 기록해 해설서인 ‘소강척자점’의 해당 숫자를 본다. 예를 들어 개, 도, 윷이 나왔다면 214를 찾아 그 결과를 찾아보는 식이다. 214는 여조무익 즉, ‘날개가 없는 새와 같다’는 뜻이다. ‘소강척자점’에 한문으로 부연돼 있는 설명에 따르면 ‘자기 자신 외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날개가 없는 새와 같다. 하늘로 날아갈 수 있어도 종일토록 얻는 게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꿈을 자주 꿨다. 

“새벽에 잠깐 비가 뿌리더니 늦게 잤다. 배 만들 목재를 운반해 왔다. 새벽꿈에 영의정이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고 나는 관을 벗고 있었는데 함께 민종각의 집으로 가서 이야기하다가 깼다. 이게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1594년 11월 8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초하루 자시에 꿈을 꾸니 부안의 첩이 아들을 낳았다. 달수를 따져보니 낳을 달이 아니었으므로 꿈이지만 내쫓아버렸다. 몸이 좀 나은 것 같다.”-1594년 8월 2일

“흐렸다. 새벽꿈에 이일(李鎰)과 서로 만나 내가 많은 말을 했다. ‘나라가 위태하고 혼란한 때를 당하여 중대한 책임을 지고서도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데 마음을 두지 않고 구태여 음탕한 계집을 끼고서 관사에는 들어오지 않고 성밖의 집에 멋대로 거처하면서 남의 비웃음을 받으니 생각이 어떠한 것이오. 또 수군 각 관청과 포구에 육전의 병기를 배정하여 독촉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이 또한 무슨 이치요?’라고 하니 순변사가 말이 막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기지개를 켜고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었다.”-1594년 11월 25일

오랜 시간을 사후세계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해온 한 대학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사후세계가 분명 있다. 남극을 가보지 않았지만 남극을 다녀온 사람의 증언에 의해 남극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후세계에선 자기가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고 신이라고 믿는 형상도 본다”고 덧붙였다. 

또 자살은 사후세계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자살하는 순간 굉장히 후회한다고 한다. 교수가 끝으로 한 말은 “선행을 많이 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젊었을 적에는 이순신 장군이 의지했던 점이나 사후세계 이야기에 무관심했던 기자가 요즘 들어 이런 것들에 관심이 가는 건 나이를 먹는 징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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