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늙어보긴 처음이야
나도 늙어보긴 처음이야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18.08.24 11:26
  • 호수 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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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문턱에 들어서니

몸도 친구 간 대화도 달라지지만

나이듦의 밝은 면을 보고

‘척’하지 않고 섭섭해 하지 말자

나 자신에 다짐해본다

5년 전 ‘백세시대’에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땐, 50대가 시니어신문에 글을 쓴다는 게 어색했다. 그래서 가까운 나의 엄마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외할머니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이어 영국 유학시절에 머물렀던 하숙집 할머니의 일화로 발전하였고, 100세시대의 황금기는 60부터라는 것, 그 황금기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40~50대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새 내 자신이 60대 문턱에 들어섰다. 당혹스런 일들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이 변하고 나도 변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듯 하지만 맞닥뜨리는 일들이 예전 같지 않다. 몸의 각 기관이 나이 생각을 하라고 시위를 하는 듯하다. 어깨가, 눈이, 치아가, 팔다리 근력이,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얘기도 변했다. 한 때 아이들이 한참 자랄 때는 어떤 학원이 좋고, 어떤 과외선생님이 좋은지 정보를 나누느라 골몰하더니, 이젠 좋은 의사선생님과 병원 정보를 교환하고 좋은 약 소개받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연로하신 부모님 모시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시어머니가 무릎수술 하시고, 친정 아버지는 넘어지셔서 입원하셨단다. 요양병원은 어디가 좋고, 어느 요양원엔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정보를 공유한다. 한 친구의 치매 걸리신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처음엔 배를 잡고 웃다가 모두 슬퍼져 눈가를 적시기도 한다. 주간보호센터에 가신 이후로는 환자도, 돌보는 가족도 모두 마음 놓게 된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다음은 자녀 시집장가 보내는 이야기에 손자손녀 이야기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언제부턴가 세어보니 열 명쯤 모이면 절반은 자녀 출가시킨 친구들, 반은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자녀가 있는 집이다. 출가시킨 자녀 중에도 반은 손주가 태어난 집. 나머지 반은 기다려도 아직 애기 소식이 없는 집이다. 그래서 손주 자랑은 아무래도 눈치가 보인다. 

공동 대화방에 예쁜 손자손녀 자랑 좀 해보라고 누가 말문이라도 열면 올라오는 사진과 소식이 요란하기 짝이 없다. 황혼육아로 피곤한 할머니들이 그 때만은 얼굴이 활짝 핀다. 

직장생활로 바쁘던 친구들은 그들대로, 오랫동안 살림만 하던 친구들은 또 그들대로 오랫동안 열망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하지 못했던 일들을 꿈꾸고 있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는 친구도 있고,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는 친구도 있다. 다리가 떨리기 전에 가슴이 떨릴 때 떠나겠다는 생각이란다. 대학교수인 친구는 5년 후 은퇴를 앞두고 미리 공부하고 있는 게 있다. 전공과는 전혀 다르게 놀랍게도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디자인, 안 해?” 하고 묻자, “그건 평생 했잖아”하며 싱긋 웃는다.

형제 간 베푸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친구도 있다. 평생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올 초에 은퇴한 친구는 요즘 베푸는 기쁨에 가득 차 있다. 딸 부잣집 막내인 그녀는 그동안 바빠서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언니들에게 해외여행을 통 크게 선물하고, 맛있는 집에 초대해 근사한 저녁을 사기도 했단다.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행복으로 가득하다. 행복은 자기가 남을 위해 돈을 쓸 때 더 느낀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에게 돈을 쓰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위해 소비하는 사람보다 더 큰 행복을 경험한다고 한다. 보너스를 받은 16명 직원을 8주 후에 조사해 보니 자신을 위해 돈을 쓴 사람보다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다른 이를 위해 돈을 사용했다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느끼고 있었다. 즉 돈을 얼마나 가졌나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굿라이프>를 쓴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인생은 외줄타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서로 다른 여러 상황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인간의 행복과 관계는 있지만 돈이 도움도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 이제 나도 인생의 황금기에 들어섰어. 재미있고 빛나게 살기 위해선 부정적인 면보다는 인생의 밝은 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젊은 척, 어린 척, 주름 없는 척, 너무 강인한 척 하지 않을 게. ‘아줌마’라고 불러도, ‘어머님이..’ 라고 말을 시작해도 기분나빠하지 않을 게. 잇몸이 예전같이 튼튼치 않아도, 귀가 좀 안 들려도, 애들이 하는 말 잘못 알아들어도 서러워하지 않을 게. 눈이 잘 안보여 책읽기가 불편해도 짜증내지 않을 게. 어깨가 점점 얼어붙는 듯하며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어도 이젠 순순히 받아들일 게.

그래도 아직은 좀 참아 줘. 짜증내고 섭섭해 해도 조금 참아 줘. 

왜냐하면 나도 아직 낯설거든. 나도 늙어보긴 처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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