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72]남의 생각 나의 의견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72]남의 생각 나의 의견
  • 하 기 훈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18.08.31 13:28
  • 호수 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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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생각 나의 의견 

대뜸 다른 의견을 만들어내지 말고

또한 대뜸 지나간 일로 여기지도 말고

모름지기 자세히 연구하여

말하는 이의 본지(本旨)를 알고자 힘쓰고

반복하여 증험(證驗)하여야 합니다 

勿遽生別見      (물거생별견)

亦勿遽屬過境   (역물거속과경)

須融會硏究      (수융회연구)

務得說者本旨   (무득설자본지)

反復參驗         (반복참험)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여유당전서』문집 권22   ,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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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이견(異見)을 가진 사람들과 충돌하여 많은 분란(紛亂)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견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윗글은 다산(茶山) 정약용의 「도산사숙록」 가운데 한 조목입니다. 「도산사숙록」은 짐작할 수 있듯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사숙(私淑)하며 얻은 것을 기록하여 정리한 책입니다. 1795년에 다산은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 변복잠입사건에 연루되어 금정역 찰방(金井驛察訪)으로 좌천됩니다. 그해 겨울, 그는 이웃집에서 『퇴계집』을 얻어 매일 아침 세수한 후 거기에 수록된 편지 한 편씩을 읽었습니다. 오전에 공무를 보고 오후가 되면 편지를 읽으며 깨달은 점을 부연(敷衍)하여 기록하였는데, 그 기록을 정리한 것이 바로 「도산사숙록」입니다. 

퇴계가 젊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에게 답한 편지를 읽고 다산은 퇴계의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을 초록한 뒤 자신의 생각을 적었습니다. 퇴계는 율곡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가 선유(先儒)의 학설에서 옳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서 깎아내리고 배척한다는 인상을 받은 모양입니다. 다산은 이에 대해 초학자들이 공부하며 장자(長者)나 선생(先生)에게 질문할 때는 이럴 수밖에 없는 법이니 율곡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연합니다. 선유의 학설 가운데 문제점을 찾아내서 새로운 의견을 제출하고자 애쓰는 것은 큰 병통이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생각을 하지 않고 옛것을 인습하는 것 또한 실득(實得)이 없다. 선유의 학설에서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대뜸 다른 의견을 만들어내지 말고 또한 대뜸 지나간 일로 여기지도 말고, 모름지기 자세히 연구하여 말하는 이의 본지(本旨)를 알고자 힘쓰고 반복해서 증험하여야 한다. 그래서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이라면 한 번 웃고 말 일이고, 그 학설이 잘못되었음을 더욱 잘 알게 된다면 너그럽게 봐주고 바른 해석을 하면 되지 호들갑 떨 것은 없다고 합니다. 

다산은 「도산사숙록」에서 자신의 경솔함을 종종 반성하였는데, 이 조목 역시 퇴계의 편지를 부연하면서 자신을 경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의 물거(勿遽) 두 글자를 음미해 볼 만합니다. 다산은 새로운 의견을 내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도 아니고 지나간 일로 치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도 아닙니다. ‘대뜸’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버리는 조급함을 경계한 것입니다.(하략)      

하 기 훈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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