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안긴 너를 먹는다?
나에게 안긴 너를 먹는다?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8.08.31 13:54
  • 호수 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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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길가에 묶여 뛰놀던 누렁이

어느 날부터 안 보여 알아보니

주인님 보신용으로 쓰였다고…

반려견 1천만시대라 하는데…

개를 계속 식용으로 봐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이제 사춘기 막 지난 청년쯤 됐겠다 싶었던, 살이 통통한 애가 묶여 있던 곳에는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떠 눈을 깜빡대는 어린 강아지가 대신 앉아 있다.

부지런히 휴대폰을 열어 달력을 봤다. 말복이 엊그제였구나. 매년 요맘때면 일어나는 그야말로 연중행사인 이런 깜짝 변신을 처음 본 건 8년 전이다, 시골길이 다 그렇듯이 큰길에서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도로는 좁은 일차선이다. 

굽이굽이 오를라 치면 오는 차 가는 차 마주칠까봐 조심조심 운전해야 한다. 거기다가 갑자기 꺾이는 길에서는 좌우를 잘 살펴야 하는데 바로 그 꺾이는 길목에 늘 강아지가 한 마리 묶여있었다. 줄이 짧았으니 망정이지 좀만 길었다면 도로 한복판이 개 놀이터가 될 판이다. 처음엔 그 짧은 줄에 묶여서도 천방지축 이리저리 밝게 뛰노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귀여워서 오며 가며 맛난 간식도 주고 머리도 만져주고 예뻐했었다.

그러던 중 해가 쨍쨍 내리쬐던 여름 어느 날. 이 다 큰 누렁이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애기 누렁이가 앉아있는 거다. 물어보니 말복에 몸보신하셨단다. 그렇다면 이 애기 누렁이는 내년에 쓸 몸보신용 누렁이라는 말이다. 일 년에 한 번씩 교체되는 그 집의 개 이름은 모조리 누렁이다. 2012년 누렁이, 2013년 누렁이, 2018년 누렁이까지…. 

집에 와서 한참동안 정신이 멍해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낸 건 고작, 그 집 누렁이에게 ‘정 주지말자’였다. 

시골이라고 다 보신용으로 개를 키우는 건 아니다. 그 누렁이 바로 앞집에는 칠십은 넘으셨을 할머니 한 분이 키우시는 모녀 개 두 마리가 있다. 누렁이랑 같은 진돗개 사촌인데 엄마 개 이름은 메리라 했다.

한 달에 서너 번씩 등심 살코기 사다가 달달 볶아 먹이며 정성스레 키우시다가, 얼마 전 메리가 병에 걸려 죽고 지금은 그 메리 딸과 할머니만 조촐하게 살고 계신다. 메리가 죽은 이유가 한 달에 서너 번씩 달달 볶아 먹인 그 살코기 때문일까. 사인은 심장마비였단다. 

지난 초여름. 메리 할머니가 고춧대를 세우다가 엉덩방아를 찌어 거동을 잘 못하시고 지금은 자리보전하고 계시는 중인데, 그 집 앞만 지날라치면 악착스레 짖어대던 그 메리의 딸이 웬일인지 안보이고 조용하기에 궁금해서 물어봤다. 메리 딸은 지금 몸이 불편한 할머니 옆에 딱 붙어 앉아 이리저리 할머니 볼을 부비면서 병간호중이란다. 서울에 있는 딸보다 훨씬 낫다.

보신탕. 앞으로는 먹기 힘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국회에서 ‘동물 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유를 막론하고 개를 죽이는 행위가 금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식용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개를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될 터이니 자연히 개고기는 사라지게 될 게다.

보신탕 지킴이들은, 보신탕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우리 고유 음식이니 우리가 지켜가야 한다. 소, 돼지랑 마찬가지로 집에서 키우다가 식자재로 쓰는 게 뭐가 문제냐. 개식용 자체를 불법으로 규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하고.

반대론자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힘들던 과거에는 단백질 보충을 위해 먹었지만 지금은 개를 먹지 않더라도 싼 값으로 몸을 보신할 수 있는 식재료가 널려 있는 만큼 이제는 개를 식용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하고.

애견. 요즘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이라는 반려에 견을 붙여 반려견이라 부른다. 곧 애견인구 천만시대란다. 애견놀이터, 애견카페, 애견보험 등등에 관한 많은 직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 인터넷이 판을 치는 요즘, 개를 계속 식용으로 볼 것인가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푹푹 찌던 어느 말복 날. 동네사람 네댓 명이 개 한 마리를 끌고 각종 야채랑 솥단지랑 몽둥이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서, 데리고 간 개를 나무에 묶어놓고 몽둥이찜질을 하던 도중에, 줄이 풀려 매를 맞던 피투성이의 개가 절뚝거리며 도망을 가더란다. 그때 그 개를 키우던 주인이 ‘해피야 이리와’ 했더니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해피가 절뚝거리며 주인 품에 안기자, 그 주인은 해피를 다시 나무에 묶고 다른 사람들이 ‘오뉴월에 개 패듯 한다’는 우리 속담의 어원 그대로 몽둥이찜질을 한 다음, 다들 둘러 앉아 몸보신을 했다 한다. 

머릿속에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납량 특집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우리가 ‘개는 몸보신용 식자재’로 계속 인식하는 이상, 이 땅에 있는 많은 ‘해피’들은 주인이 부르면 피를 흘리면서도 달려가 주인 품에 안길 것이고, 결국에는 그 주인 뱃속을 채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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