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은 갑질의 수단이 아니다
오디션은 갑질의 수단이 아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9.07 11:31
  • 호수 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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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영화가 제작과정에서 유료 오디션을 본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을 대상으로 5000원의 참가비를 받았던 것이다. 모 배우의 폭로로 이 사실이 드러나자 해당 영화감독은 이렇게 항변했다.

“오디션 비용은 프린트비, 청소비, 간식비 등 오디션 진행에 사용됐다. 제작부에서 1만 원으로 문자를 발송했다가 부담이 될까 싶어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으로 줄였다. 오디션을 무료로 진행하는 게 관행이지만 이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외국은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오디션 지원비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감독의 해명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어봐도 도저히 동조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선의로는 읽히지 않고 ‘갑질’로만 보인다. 

오디션은 기업에서 실시하는 면접과 같다. 대기업에서는 면접 대상자에게 교통비와 식대가 포함된 일종의 면접비를 지급한다. 이러한 흐름은 중소기업으로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기업이 면접 대상자에게 소정의 면접비를 지급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다. 채용 결과를 떠나서 기업이 우월적 입장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면접 참가자를 대우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료 오디션은 영화 관계자들이 우월적 입장을 과시한 행동이다. “무명인 너희들이 우리 영화에 오디션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라”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작 턱 없이 부족한 연기력을 가진 연예인들은 오디션도 보지 않는다. 아이돌이라 불리는 젊은 가수들이 대표적이다. 대형기획사에서 얼굴만 보고 뽑은, 모델 같은 ‘자칭 배우’도 무임승차하듯 캐스팅된다. 이런 연예인을 뽑은 영화나 드라마가 처절하게 망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다행이지만.

2012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큰 감동을 선사한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역으로 출연해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한 앤 해서웨이와 관련된 캐스팅 비화가 있다. 그녀는 제작 소식을 듣고 ‘판틴’ 역을 맡고 싶어 오디션에 참여했다. 당시 앤 해서웨이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감독 앞에서 3시간 넘게 노래를 부르는 열정을 과시했고 캐스팅 순위에도 없었지만 결국 배역을 따냈다. 장발장을 연기한 휴 잭맨과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도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 이 영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는 주요 배역에 대한 오디션을 철저히 진행한다. 

오디션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지 갑질의 도구가 아니다. 비록 무명일지라도 배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 또한 관객과 시청자를 위해서 실력 있는 배우를 뽑는 공정한 기회의 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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