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일에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일제와 민족반역자 죄상 낱낱이 다룬 박물관
경술국치일에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일제와 민족반역자 죄상 낱낱이 다룬 박물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9.07 13:44
  • 호수 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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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독립운동가 후손, 시민 등 성금 16억원 모아 건립… 7만여점 자료 보유

국권 넘기는 내용 담은 ‘순종황제의 칙유’, 친일파의 훈장‧메달도 전시

일제와 민족반역자의 만행과 죄상을 낱낱이 소개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건립위원회가 출범한지 8년만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에 문을 열었다. 사진은 개관일 관람객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습.
일제와 민족반역자의 만행과 죄상을 낱낱이 소개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건립위원회가 출범한지 8년만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에 문을 열었다. 사진은 개관일 관람객들이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관을 둘러보는 모습.

몇 해 전 한 네티즌이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할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것이라며 건국(建國)이 새겨진 훈장 사진을 올렸다. 이 훈장을 본 많은 사람들은 훌륭한 할아버지를 뒀다며 글쓴이를 위로하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해당 훈장은 일제가 중국땅에 세운 만주국(1932 ~1945)의 건국 훈장으로 민족반역자에게 수여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해당 훈장을 부러워했던 수많은 네티즌들은 망신을 당해야 했다. 

이와 같은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곳을 주목하는 것이 좋다.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 서울 용산구에 문을 연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다녀온다면 자신도 모르게 민족반역자를 칭찬하는 일은 현저히 줄 것이다. 

국내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은 2011년 2월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출범한 지 8년만에 빛을 본 것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부와 시민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민간 박물관이다.

꼭 필요한 박물관임에도 개관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송기인 초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이 재직 2년간 받은 급여 2억원을 전액 기탁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건립이 추진됐다. 이후 초등학생들부터 학계, 시민사회 인사들까지 1만여명의 시민이 건립운동에 참여해 16억5000만원의 건립 기금을 조성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도 자료와 기금을 보내는 등 건립운동에 동참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들과 학계 인사들 역시 1억원이 넘는 기금을 보냈다.

자료 기증도 활발히 진행됐다. 독립운동가 후손,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 일본 시민단체 등이 귀중한 자료를 내놓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조경한 선생의 외손 심정섭 선생이 68차에 걸쳐 총 6000점이 넘는 자료를 정리해 보내온 것을 비롯,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낸 차리석 선생, 문화부장을 지낸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건국동맹의 채충식 선생, 부민관폭파의거의 주역 조문기 선생의 유품도 후손들이 기증해 왔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의 남북교류 자료, 윤정옥 선생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자료, 성대경 선생(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의 의병 관련 자료, 민족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 이돈명 변호사와 한승헌 변호사의 법조 관계 자료, 전기호 선생의 강제동원 관련 자료 등도 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7만여 점의 자료와 5만여 권의 도서 중 엄선해 배치하는 상설전시관은 4부로 구성된다. 1875년 운요호 사건에서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70년에 걸친 일제 침탈과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을 담았다. 강제병합 당시 순종의 칙유와 데라우치 통감의 유고, 을사오적 등 거물 친일파의 훈장 등 유품을 비롯해 선전자료, 일기 책자 같은 문헌자료, 문서 지도 사진 등 희귀한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먼저 순종황제의 칙유는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밝힌 내용의 석판 인쇄 원본이다. “국권을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웃 나라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긴다”고 쓰여 있다. 조선 1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부임하면서 시정방침을 밝힌 포고문에는 “전 한국원수의 희망에 응하여 그 통치권 양여를 수락한다”고 쓰여 있어 조약 체결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
을사오적 중 한 명인 권중현이 한국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과 증서

을사오적 중 하나인 권중현이 병합을 기념해 받은 메달도 확인할 수 있다. 권중현은 1907년 1월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힌 고종황제의 친서가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직후 ‘을사오적’의 암살을 기도한 나인영, 오기호 등에게 저격당했으나 목숨은 잃지 않았다. 강제병합 뒤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고문에 임명돼 1920년까지 10년간 매년 1600원의 수당을 받았다.

천인침도 눈길을 끈다. 천인침은 참전한 사람이 무사하기를 빌며 1미터 정도 길이의 흰 천에 붉은 실로 여성 1000명이 한 땀씩 꿰매어 만든 일종의 부적이다. 천인침은 부적과 같이 배에 두르거나 모자에 꿰매고 다녔다.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일장기도 있다. 이나바부대 보병 제6사단 등이 1937년 7월에서 1938년 11월까지의 중일전쟁 전투일지를 기록한 것으로 난징과 한커우를 점령한 날짜가 정확히 적혀 있다. 남징대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정이 눈에 띈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내가 사는 사회를 아는 것이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게 박물관의 건립 취지”라며 “과거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오늘의 내가 어떤 사회를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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