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7) 횡단열차 올라 자작나무 숲 보니 영화 ‘닥터 지바고’ 보는 듯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7) 횡단열차 올라 자작나무 숲 보니 영화 ‘닥터 지바고’ 보는 듯
  • 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09.14 11:09
  • 호수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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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문광수 여행가]      

시베리아 열차는 러시아의 마지막 자존심… 매일 시트 교체 등 위생관리

‘모스크바 역’이 모스크바행 열차가 떠나는 역이라니… 이상한 역명 황당

모스크바역 전경. 러시아의 기차역은 복잡하다. 옛 공산정권 시절의 위세가 남아있는 듯하다.
모스크바역 전경. 러시아의 기차역은 복잡하다. 옛 공산정권 시절의 위세가 남아있는 듯하다.

바이칼호의 캠프를 정리하고 이르쿠츠크로 왔다. 이르쿠츠크는 주 정부가 있는 중부내륙의 중심도시이다. 바이칼호를 옆에 두고 있어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도시 가운데 앙카라강이 흐르고 있어 수중 도시처럼 아름답다. 앙카라강은 바이칼호에서 유일하게 물이 흘러나가는 강으로 수량이 많고 깨끗하다. 

도심은 비교적 조용하고 넓은 도로와 주 정부 청사가 있으며, 광장 공원은 제국시대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르쿠츠크에 우리나라 영사관이 있다. 한국식당을 찾아 오랜만에 김치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시가지에 있는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 또한 오랜만이라 한번 들러 보았다. 역시 젊은 학생뿐이다. 

명품으로 보이는 가죽제품 가게를 들러 보았다. 역시 이곳은 추운 지방인 것을 실감케 한다. 털부츠, 털모자 등 그 부피가 대단하다. 이곳에서도 20~30분 동안 손님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도심이라 해서 북적대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기차역은 복잡하다. 절대적 교통수단이 철도이고 인민 통제수단으로 사용되던 철도와 기차의 위세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다. 역 대기실도 나뉘어 있다. 붉은 완장을 두른 간부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공산주의 악몽이 떠오르곤 한다. 

모스크바까지 가는 대륙횡단열차 승무원이 작은 가방을 받아들고 객실까지 안내한다. 4인실을 두 사람이 사용하게 되어 여유가 생겼다. 한 평 정도의 크기에 양쪽으로 이층 침대가 있고 가운데 창문에 붙여서 작은 식탁이 놓여 있다. 시트를 매일 교체하고, 하루에 두 차례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객차 한 칸에 승무원 한 사람이 배정되어 위생 관리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옆 객실의 아이가 기차여행이 지루한 듯 구조물에 걸터앉아 밖을 보고 있다.
옆 객실의 아이가 기차여행이 지루한 듯 구조물에 걸터앉아 밖을 보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면서 유심칩의 통신서비스지역을 벗어났다. 스마트폰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손에서 떨어지지 않던 스마트폰을 놓으니까 한결 여유가 생기고 편안해졌다. 옆 객실의 어린아이는 벌써 지루한 나머지 나에게 교감을 원한다. 장난기가 생긴 것이다. ‘그래 내가 상대해 주마. 사진도 서로 찍고 같이 놀자꾸나.’ 시간이 흐르면서 옆 객실의 사람과도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한다. 

중국인 아줌마 부대는 공중도덕이나 염치가 없다. 마구 큰소리로 떠들고 이야기하고, 깔깔대는 웃음으로 주위를 의아하게 한다. 통로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드디어 중국 아줌마들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동서의 문화적 차이가 극심하다. 객실도 동서를 고려해서 승객을 배정하는 것 같다. 

차창 밖의 풍경이 주마등같이 흘러간다. 자작나무 숲에서 소나무 숲으로 풍경이 바뀌더니 또 가문비나무로 바뀐다. 산에서 평지로 숲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모습. 철길을 따라 작은 언덕에는 들꽃이 하늘하늘 춤추듯 흘러간다. 

꼼짝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나니 식욕이 뚝 떨어진다. 오늘은 즉석 죽 하나, 자두 2개, 소시지와 커피 2잔으로 하루를 때웠다. 영화처럼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 이야깃거릴 생각해낸다. 

대평원의 자작나무 숲을 보고 영화 ‘닥터 지바고’를 생각한다. 유리와 라라의 운명적 만남과 열차, 눈 덮인 우랄산맥의 오지에 숨어들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유리의 궁핍하고 지루한 전원생활, 그러다 우연히 라라와의 뜨거운 재회, 그리고 헤어짐. 전차에서 라라를 보고 뛰어내려 달려가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유리, 딸을 찾아 방황하는 라라. 러시아 문학의 스펙터클이 열차의 창밖에 전개되는 것 같다. 

러시아에서 모든 열차 시간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리고 모스크바역에서의 해프닝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역은 서울역이다. 그리고 대구에 있는 역은 대구역이다. 인터넷에서 모스크바역 근처에 있는 한인 민박집을 검색했다. 그래서 모스크바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한인 민박집을 찾았다. 모스크바역에서 한 블록 사이에 있는 한인 민박집은 모스크바역 앞에서 좌회전, 우회전, 우회전 하면 된다. 약도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모스크바역에 내렸다. 

그런데 한인 민박집을 가기 위해 약도와 거리를 살펴보니 완전히 다르다. 이상해서 택시 기사에게 약도를 보이고 물어보았다. 택시 기사가 모르겠다고 한다. 이상해서 전화를 했다. “모스크바역에 내렸느냐?” “그렇다”고 대답했다. 전화로 옥신각신한 끝에 알고보니 예약한 모스크바역에서 5분 거리라던 민박집은 모스크바에서 800km나 떨어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민박집이었다. 

어찌 된 일일까. 분명히 모스크바역에서 가까운 민박집을 찾았는데. 러시아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역을 모스크바역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서울에서 강릉행 기차를 타는 청량리역은 강릉역이고 부산행 열차를 타는 서울역을 부산역이라고 한다는 것. 어이없고 너무나 황당했다. 그래서 모스크바에서는 계획에 없던 만다라 호텔에서 호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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