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과 한국의 미신들
손 없는 날과 한국의 미신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9.14 11:12
  • 호수 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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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9월 마지막 주말에 이사하려고 했는데 그날이 하필이면 ‘손 없는 날’이어서 이사비용 때문에 앞당기게 됐어요.”

최근 이사를 한 지인이 당초 말했던 것과 달리 날짜를 변경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부득이하게 이사를 하는 건데 주말과 손 없는 날까지 겹쳐 이삿짐을 옮기는데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날짜를 앞당긴 것이다. 

미신을 믿지 않기에 손 없는 날 같은 건 신경쓰지 않았지만 막상 지인이 이로 인해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자 이 날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손 없는 날은 막연하게 이사하기 좋은 날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풀어서 말하면 ‘방해하는 귀신이 없어 어디로 이사해도 해코지 안 당하는 날’이다. 손은 손님의 줄임말로 동서남북을 옮겨 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하는 귀신을 뜻한다. 이 귀신은 날짜에 따라 방향을 옮기는 데 매달 음력 초하루‧초이틀(끝수가 1 또는 2인 날)은 동쪽, 초사흘‧초나흘(끝수가 3 또는 4인 날)은 남쪽, 초닷새‧초엿새(끝수가 5 또는 6인 날)는 서쪽, 초이레‧초여드레(끝수가 7 또는 8인 날)는 북쪽에 출몰한다고 한다. 선조들은 해당 날짜에는 해당 방향으로 이사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 

특히 귀신이 하늘로 올라가 없는 매달 끝수가 9와 0인 날(음력 9‧10‧19‧20‧29‧30일) 즉, 손 없는 날은 이사하기에 최적의 날짜라고 믿었다. 손 없는 날 이사비용이 더 든다는 점을 보면 현재까지도 이러한 미신은 유효한 듯하다. 

세계 어딜 가도 그 나라만의 독특한 미신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때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미신이 과학적 사실처럼 여겼다. 실제로 음주 후 선풍기를 틀어놓고 잤다가 숨진 사례가 보도되면서 이에 대한 맹신은 커지기도 했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저주로 인해 사람이 죽는다는 황당한 미신도 있다. 기자는 다색볼펜을 이용해 취재를 하다가 중요한 내용은 빨간색으로 기록한다. 그러다 취재원의 이름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빨간색으로 쓰려다 흠칫 놀라며 매번 다른 색으로 바꾼다. 황당한 미신인 것은 알지만 이러한 믿음이 널리 알려진 사회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고나 할까.

미신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와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세시풍속의 하나로 바라볼 필요는 있다. 다만 이를 악용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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