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원하는 고통 없는 죽음
누구나 원하는 고통 없는 죽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9.14 11:15
  • 호수 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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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죽는 순간 고통 없이 가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그건 로또를 맞는 것과 같이 어렵고도 예측 불가능한 일이다. 생전에 덕을 많이 쌓아놓으면 가는 길이 편안하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세계평화와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한 윈스턴 처칠과 베토벤의 임종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윈스턴 처칠(1874~1965)은 평생 두 가지 약을 달고 살았다. 심혈관 계통 질병과 우울증이다. 그럼에도 그는 시가를 태우고 술을 마셨다. 그에게 알코올은 일종의 진정제이기도 했다. 

1953년 79세 때 그는 다우닝가 10번지 수상 관저에서 아무도 모르게 뇌졸중 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죽음이 다가온 순간에도 특유의 유머를 날렸다. “나는 은퇴를 하고나면 빨리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할 일이 없는데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요?”.

수상 직에서 물러난 후 집에서 반려견을 돌보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많이 쓰면서 소일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앙티브에서 모나코까지 해외여행도 했다. 1962년 처칠은 청각을 잃어가고 걷기도 힘들어졌다. 호텔 방에서 낙상해 대퇴골 경부 골절을 당하기도 했다. 

1963년 10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 벌어졌다. 딸 다이애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처칠은 침묵했다. 충격으로 부인 클레멘타인은 입원했다. 처칠은 글쓰기로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 

2년 후 처칠은 정신적 혼미함, 시공간적 감각상실 증세 등이 연이어 나타났다. 10월 10일, 급성 뇌출혈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졌다. 가족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의사들이 그의 집을 방문해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모든 조처를 다했다. 잠시 의식이 돌아올 때도 오랜 습관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술을 마셨다! 위스키를 한잔 마신 후 그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날과 같은 1월 24일 눈을 감았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청소년기가 끝나갈 무렵 복통과 경련, 변비, 소화불량 등을 겪었다. 납 중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증세는 그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중금속이 물, 와인, 음식, 가재도구, 약병, 향수병 등 도처에 산재했다. 심지어 복통 약에도 납이 들어 있을 정도였다.

음악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의 청각장애는 심해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납이 그의 신체조직 속으로 침투해서다. 납 중독의 증상 중 우울증이 있다. 베토벤은 우울증으로 32세에 자살을 떠올리기도 했다. 청각을 완전히 잃게 되자 노트에 글자를 적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이어갔다. 의사들은 그를 치료하지 않고 음악천재의 청각장애를 관찰하고 연구할 뿐이었다. 

1827년 3월 26일, 베토벤은 자리에 누웠다. 흉곽부근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오후 5시 무렵 창밖에 폭풍이 몰아쳤다. 베토벤은 두 눈을 뜨고 앞을 응시하더니 주먹을 불끈 쥔 채 팔을 들어 올리고선 그렇게 몇 초 동안 가만히 있었다. 한손은 가슴에 얹고 치켜들었던 나머지 한손은 힘없이 툭 떨어졌다. 음악 천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한 음악가가 천재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는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몇 가닥 잘랐다. 이 머리카락은 그 후 기나긴 시간여행을 거쳐 최근 런던 소더비경매장에 나타났다. 머리카락을 사들인 미국의 한 재단이 실시한 테스트 결과 머리카락에서 정상치보다 100배가 넘은 납 성분이 발견됐다.

머리카락만이 시간여행 길에 오른 것이 아니다. 의사들은 지금도 그의 시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의사 바그너는 베토벤의 임종 다음날 시신을 부검했다. 그는 “두개골과 청각기관, 청각신경이 축소돼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간경화 증세도 발견됐다”고 기록했다. 그는 불안감과 통증을 잊기 위해 자주 술을 마셨다. 부검을 하는 동안 다른 의사들은 시트 뒤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베토벤의 두개골을 내리쳐 산산조각을 낸 다음 그 조각들을 훔쳤다. 이렇게 베토벤의 몸은 의학적 야망을 채우려는 의사들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2010년 그의 두개골 조각들이 다시 크리스티경매장에 등장했다. 그의 두개골 파편을 통한 뼈 조직 검사 결과 역시 납중독이 또 한 번 증명됐다. 

이 글은 ‘그 죽음들은 오래도록 지속된다’(파트릭 펠루·갈라파고스)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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