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오케스트라
상생의 오케스트라
  • 김동배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8.09.14 11:22
  • 호수 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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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우리나라 대학생의 81%는

고교를 ‘사활 건 전장’으로 인식

다양성과 창의성이 보장되며

선의의 경쟁 펼쳐지는 美교육

한국에선 언제쯤 실현될까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4개국 대학생을 국가별로 1000명씩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의 차가 컸다. 설문지에서 그들이 다닌 고등학교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함께 하는 광장,’ ‘거래하는 시장,’ ‘사활을 건 전장’ 중 하나를 고르게 했더니 한국 대학생의 81%가 사활을 건 전장을 택했다. 일본 대학생은 76%가 함께 하는 광장을 택했다. 이는 한국의 고등학교가 좋은 대학을 목표로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라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며, 결국 한국 학생들은 고등학교 시절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보고서를 보면서 내가 대학 재임 시 우리 집 아이들이 유학하고 있던 미국 애틀랜타에 가 있었을 때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는 ‘올 스테이트 오케스트라(All-State Orchestra)’라고 하는 고등학생 관현악단이 있는데 매년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모집하여 한 번 공연하고 해체하는 악단이다. 당시 우리 큰 아들은 플루트 부문에 지원하였다. 선발된 학생은 그 해 그 주에서 각 악기를 가장 잘 연주한다고 평가받는 예비 음악가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날 관악기와 타악기 오디션을 보는 어느 중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주최 측은 넓은 카페테리아 홀에 부모와 학생들이 대기하면서 연습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자기 악기를 갖고 열심히 연습하였다. 

트럼펫을 부는 흑인 남자아이는 미남형인데다가 꼿꼿한 자세가 기마병처럼 멋있어 보였다. 똑같은 트롬본을 부는 덩치 큰 백인 남자아이 둘은 아마 같이 합격하기로 단단히 약속한 모양이었다. 클라리넷을 부는 키가 큰 여자아이는 귀걸이까지 해서 숙녀 티가 났다. 드럼을 치는 백인 남자아이는 흰 모자를 장난스럽게 쓰고 있었는데 손놀림으로만 열심히 연습하였다. 머리를 빡빡 민 남미계 남자아이는 심각한 모습으로 자기 키 보다 훨씬 크고 보기에도 장엄한 바순을 연습하고 있었고, 오보에를 부는 백인 남자아이는 넥타이까지 매고 나왔다. 색소폰을 연습하는 흑인 남매는 지금 곧 거리의 악사로 나가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플루트를 부는 동양 여자아이는 지적이지만 좀 수줍어 보였고, 튜바를 부는 백인 남자아이는 아직 개구쟁이 티도 벗어나지 않아 보였다. 그 외 여러 악기들이 등장하였다. 홀은 여러 가지 악기소리로 꽉 차 있었지만 그 소리들은 전혀 시끄럽지가 않고 오히려 희망과 기대의 협주곡으로 들렸다. 

다양성과 창의성, 그리고 선의의 경쟁! 홀에 흐르는 정신이 있다면, 그것은 그 나이 아이들이 보여주기 힘든 삶의 다양한 특성과 악기를 다루면서 얻어지는 창의성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유와 자연스러움은 남보다 월등하게 잘 해서 기필코 이겨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열려져 있는 기회의 문을 즐겁게 통과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였다. 그중에서 정말 재능 있는 아이는 음악을 전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학교 밴드부에 소속되어 1년에 한두 차례 부모들 앞에서 학예회 수준의 연주 경험을 발전시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이 오디션에서 떨어진다 해도 지역 관현악단(District Orchestra)에 속해서 연주회를 가질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학교 때까지 악기도 하고 미술도 하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대입준비 때문에 모든 것을 중단한 후, 결국 취미로도 계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동안 들인 돈과 공이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음악과 예술은 전공 못지않게 취미로도 의미가 있다. 최고 일류로 잘 하지는 못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늘 다듬고 보여주면서 평생을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친구들끼리 앙상블도 조직하고, 자선활동도 펼치고, 때로는 아마추어 관현악단에도 참여한다면, 음악이 자기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뿐 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예술은 최고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이 1등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세계라면 아름다움과 평화를 추구하는 예술성은 결코 창조되지 못할 것이다. 프로만 존재하고 아마추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상상만 해도 각박하고 답답하다. 1등과 꼴찌가 공존하는 상생(相生)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한 곳에서의 꼴찌가 다른 곳에서는 1등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다양한 학예회, 곳곳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페스티벌, 재능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을 것 같은 거리의 악사, 이런 바탕 위에 미국의 문화산업, 특히 쇼 비지니즈(Show Business)는 성장하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에서 청소년들은 자기의 특징을 견지하면서 서로가 역할 분담을 하는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된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어려서부터 형성되는 창의와 융화, 경쟁과 협력의 정신은 미국의 오늘을,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강으로 만들어가는 힘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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