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1970년대 최고층 ‘삼일빌딩’ 설계한 김중업 회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1970년대 최고층 ‘삼일빌딩’ 설계한 김중업 회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09.14 13:43
  • 호수 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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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현대건축 1세대… 부산 유엔기념공원 정문 등 기념비적 건물 설계

사진‧영상 등 3000여점… 세계 곳곳에 뿌린 김중업 건축 흔적도 보여줘

1970년대 국내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을 설계하는 등 한국 모던 건축 1세대로  큰 족적을 남긴 김중업을 회고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과 영상 3000여점을 통해 그의 건축사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삼일빌딩 모형 등 그의 대표작을 소개한 전시장 모습.
1970년대 국내 최고층 빌딩이었던 '삼일빌딩'을 설계하는 등 한국 모던 건축 1세대로 큰 족적을 남긴 김중업을 회고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과 영상 3000여점을 통해 그의 건축사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삼일빌딩 모형 등 그의 대표작을 소개한 전시장 모습.

롯데월드타워와 63빌딩 이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인 삼일빌딩, 부산 유엔기념공원 정문과 부산충혼탑, 한국현대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로 평가되는 주한프랑스대사관, 광주문화방송국(현 광주MBC), 진주문화예술회관(현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등. 지역도 모양도 제각각인 이 건물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국에 모더니즘 건축을 선보인 1세대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설계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건축가들의 정신적 스승이자 국내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중업의 30주기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12월 16일까지 진행되는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에서는 공동 주최기관인 김중업건축박물관의 소장품,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사진과 영상 신작까지 더해 총 3000여점을 선보인다.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중업은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뒤 1948년부터 서울대 공대 조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머물며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던 그는 1952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세계예술가회의를 계기로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3년간 일했다. 귀국 후에는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해 모더니즘과 한국 전통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1971년 광주대단지 필화사건(1971년 광주대단지 주민 5만명이 정부의 무계획적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을 계기로 파리로 추방 당하기 직전 발표했던 삼일빌딩(지상 31층)은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빠른 속도로 개발되는 서울의 위상을 상징하는 당시 최고층 건축물이었다. 한국 사회의 급변하는 상황과 함께 1978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김중업의 건축은 전과 다르게 미래주의적 면모를 띄게 됐다. 하지만 그의 말년 계획안들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고, 88올림픽을 기념하는 ‘세계평화의 문’이 유작으로 남게 됐다.

전시 도입부에 해당하는 ‘김중업 매트릭스’에선 이런 김중업 건축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창작의 기원을 쫓아간다. 건축물이 완공될 당시 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 남긴 흑백 사진과 현재 새롭게 촬영한 동일한 건물의 컬러 사진을 앞뒤로 붙여 건축의 시간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김중업 건축 작업의 목록을 지형도로 만들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김중업이 뿌린 건축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이어 ‘세계성과 지역성’ 섹션에서는 한국적 모더니즘을 실현하려 했던 초기 건축 세계를 살펴본다. 1959년 파리에서 돌아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개소한 그는 부산대학교 본관, 서강대학교 본관, 건국대학교 도서관 등을 발표했으며 주한프랑스대사관 작업으로 한국의 모던 건축을 대표하는 작업을 남겼다. 

이중 부산대학교 본관은 1956년 설계를 시작, 1959년 10월 준공된 건물로 금정산의 지형에 따른 ‘L’자 형태이며 필로티(1층을 기둥만 세우고 벽면 없앤 구조)로 처리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규칙적인 모듈에 의한 평면구성과 높은 층고, 전면 계단실의 넓은 유리를 통한 파노라마 경관, 후면부의 모자이크 창 구성 등은 르 코르뷔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1960년에 설계해 1962년에 완공한 주한프랑스대사관.
1960년에 설계해 1962년에 완공한 주한프랑스대사관.

‘예술적 사유와 실천’에서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을 중심으로 그의 중기 대표작을 조망한다. 한국 현대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1960년 설계해 1962년 준공됐다. 경사진 대지에 관저와 대사관 및 예술관 등의 세 개 건물이 보행자의 시각 전개에 따라 서로 적절한 각을 이루며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관저와 대사관 건물의 지붕은 한식 기와지붕처럼 하늘로 치켜 올려져 콘크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느낌이다. 관저에는 우리의 궁 건축요소를 도입했고 대사관 건물에는 민가 건축요소를 가미했다. 관저 외벽을 장식한 모자이크는 옛 기와조각과 자기를 부숴 제작했다. 토속적인 재료를 추상미술의 형식과 거대한 스케일로 재구성해 주목받았다. 

‘도시와 욕망’은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도시’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그는 삼일빌딩, 도큐호텔, 중소기업은행 본점 빌딩, 갱생보호회관 등 도심 안에 당대 기술과 자본을 활용한 수많은 빌딩을 지었고, 1980년대 전국으로 확산된 지방 도시의 문화시설을 맡아 설계했다. 또한 변화하는 사회 구조에 따라 산부인과, 쇼핑센터 등 전에 없던 새로운 시설들과 독특한 개인주택들을 구상하며 급변하는 도시 속에 이상적인 공동체 공간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11월 3일 한국건축역사학회와 공동 학술 심포지엄과 김중업의 주요 건축물을 직접 살펴보는 답사 프로그램과 큐레이터 토크도 전시 기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중업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건축 유산의 재생 문제를 환기시키고, 획일화 되어가는 도시 풍경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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