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따릉이~ 사랑해요”
“서울 따릉이~ 사랑해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09.21 11:01
  • 호수 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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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한강변 달리며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를

자전거는 인류 디자인의 수작 중 하나다. 고교 시절 누이가 힘겹게 알바를 해 번 돈으로 사준 빨간색 싸이클을 애지중지했다. 가늘고 커다란 두 개의 바퀴, 삼각형 프레임, 우아한 곡선의 핸들에 넋을 빼앗길 정도였다. 밖에 내놓기 아까워 방에 들여와 벽에 걸어놓고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자전거는 영화에서 종종 로맨틱한 사랑의 매개체로 등장한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폴 뉴먼은 캐서린 로스 앞에서 자전거 묘기를 보이기도 하고 캐서린 로스를 핸들에 앉히고 고풍스런 시골마을을 누볐다. 그 장면에서 경쾌하게 흘러나온 ‘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란 노래가 세계적으로 히트하기도 했다. 1960~70년대 팝송에 심취했던 이들은 이 노래를 기억한다.

서울시가 시민 편의를 위해 시행하는 다양한 공공서비스 중 ‘서울 따릉이’가 대견하다. 시간 당 1000원을 받고 자전거를 빌려주는 것이다. 대여소가 많아 접근성이 좋고 자전거의 품질도 만족스럽다. 단지 대여 방법이 어렵고 복잡한 게 흠이다.  

일요일 오후 5시 경, 아내가 느닷없이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보자고 했다. 서울 홍제천에서 한강까지 약 7km 구간에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닦여 있다. 아내와 함께 조금은 흥분된 마음으로 홍제역 인근의 대여소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거치대에서 따릉이를 분리시키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5년 전만 해도 서울 따릉이를 빌리는 법은 간단했다. 지폐투입구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으면 잠금장치가 풀리고 바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폐투입구는 보이지 않고 자전거에 큼지막한 단말기가 부착돼 있었다.  한켠에 대여 절차를 적어놓은 표지판을 보며 한 단계씩 밟아나갔다. 먼저 스마트폰으로 서울 따릉이 홈페이지에 들어가 비회원으로 일일권을 구입했다. 여기까지도 쉽지 않다.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어야 하는 건 기본에다 눈치도 빨라야 한다. 대여번호가 나중에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고 따로 적어두는 기지가 필요하다. 역시 예감은 적중했다. 대여번호를 잊어버리면 난감한 일이 생긴다.

그런데 아주 하찮은 곳에서 문제 가 생겼다. 신용카드 정산 과정에서 ARS 인증번호가 스마트폰 창에 뜨지 않는 것이다. 이후로 20여분간 ‘소득 없는’ 과정을 되풀이 해야 했다.

다음 주 다시 따릉이 타기에 도전했다. 조마조마하게 가슴을 졸이며 10여 개의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드디어 거치대에서 자전거를 탈착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한 듯 기뻤다. 아내를 앞세우고 한강 방향으로 페달을 굴렸다. 20대에 아내와 함께 자전거를 타보고는 40여년 만에 처음 타보는 라이딩이다. 아내의 처녀 적 자전거 타는 모습이 떠올랐다. 

브라우스와 청바지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갈색의 풍성한 머리를 휘날리며 약간은 도도한 듯한 자세였다. 그런데 이 날은 아니었다. 한쪽 어깨가 늘어진 티셔츠,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어진 상체, 힘들게 오르내리는 페달, 비틀거리는 핸들…. 아내는 그날 완주하지 못했다. 반납하러 가던 중 대여소를 10여m 앞두고 다리가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다며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갔다.

3단 기어가 달린 따릉이는 승차감도 편하고 다양한 편의성을 갖추었다. 싸이클이나 MTB처럼 안장이 딱딱하지 않았고 안장 스프링이 노면 충격을 흡수해 안락했다. 핸들 앞에 매달린 바구니에 백팩 등 소지품을 넣을 수도 있다. 어둠이 깔리자 따릉이의 진가가 나타났다. 라이트가 환하게 길을 밝혀주었다. 

친절하기도 했다. 자전거 단말기에 남은 시간과 주행거리가 기록되고 가끔 ‘○○분 남았다’는 여성의 멘트도 흘러나왔다. 반납 후 대여반납이력에 이용 시간, 주행거리, 소모 칼로리, 탄소절감효과 등이 수치로 표시됐다. 

요즘 서울 따릉이를 이용하는 젊은 남녀가 눈에 자주 띈다. 풍성한 추석 연휴에 노부부가 서울 따릉이를 타고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다정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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