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그마한 배려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기고]조그마한 배려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 박기주 시인‧수필가
  • 승인 2018.09.21 11:03
  • 호수 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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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주 시인‧수필가]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팔순을 훨씬 넘긴 나조차 교통약자석에 앉기가 민망할 때가 많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이 앉은 자리 앞에 서 있으면 그 젊은이가 얼마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안할 것인가. 그래서 전철을 탈 때마다 출입구 쪽을 정해 늘 서서 가기로 작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상 때와는 달리 친구들과 등산을 가기위해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잡아당겼다. 보아하니 외국인이었다. 영어로 날 앉으라고 권했다. 괜찮으니 앉아 그대로 가라고 했다. 그러나 재차 내게 권했다.  

“정 그러시다면(If you insist)”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 외국 사람이 선뜻 자기 자리를 노인에게 양보하는 도덕정신을 높이 사고 싶은 것이다.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한다. 나는 그 콜롬비아인에게서 숭고한 품격을 읽을 수 있었다. 약한 사람에게 자리를 배려하는 것은 기본적인 생물학적 리듬이다.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자연스런 윤리이다. 

한참 앉아 가는데 나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들어오시기에 선뜻 내가 자리를 양보했다. 출퇴근시간에 등산 간답시고 가방을 메고 앉아있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앉아갔으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늘 실천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를 또 앉으라고 내 옆에 앉아 있던 중년 신사 한 분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년 신사를 앉으라고 그 옆의 젊은 청년이 자리를 또 양보한다. 그러다보니 도미노현상으로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렇게 행복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남한산성을 고향 친구들과 기분 좋게 구경하고 귀가를 하게 됐다. 일행 중에서 같은 방향인 친구와 5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웬 걸, 타고 보니 한 젊은 청년이 의자등받이 쪽을 향해 다리를 뻗고 누어 고약하게 교통약자석을 독차지하고 잠들어 있지 않은가. 차림새를 보아하니 노숙자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눈물 많은 친구가 만 원짜리 지폐를 자고 있는 노숙자 호주머니에 넣어주며 내게 말했다.

“네 몫도 함께 넣었어.”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노인‧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여성에 대한 정중한 태도, 나보다 남을 우선해주는 사고방식, 가질 만큼만 갖고 나누어주는 사회, 힘없는 자에게도 몫을 챙겨주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모두가 조금씩만 더 남을 배려할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살기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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