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빨아서 널어놓은 하얀 속옷
누군가 살고 있네
눈물 나게 서러운 흔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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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갔을 때 리조트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다. 마을도 없는데 외딴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담도 곧 허물어질 것만 같고 슬레이트 지붕의 칠도 다 벗겨져서 비가 샐 것만 같은 집에, 장대를 세우고 하얗게 빨아서 널어놓은 속옷 하나가 보였다.
사람이 다 떠나버린 잊혀지고 버려진 폐가가 아니라, 사람이 아직 살고 있다는 이 신호보다 무엇이 더 뜨거운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밭일을 나갔는지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적막한 시간만 집 마당에 가득하였다.
사람이 머물렀거나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풀포기 하나가 발길에 쓸려도 흔적이 남고, 돌멩이 하나가 옆으로 차이기도 하면서 흔적이 된다.
나 여기 아직 살아있다고, 살고 있다고, 잊혀진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항변하는 저, 눈물 나게 서러운 흔적 하나에 가슴이 아리다.
시‧글=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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