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의 발견
갈대의 발견
  •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 승인 2018.09.21 11:05
  • 호수 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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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산과 들에 멋대로 자라는 갈대

독일의 한 식물재배가에 의해

인기 있는 정원 식물로 탈바꿈

언뜻 잡초처럼 보일지라도

자연생태 공존의 환경은 매력

이 시대 최고의 식물디자이너로 꼽히는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 네덜란드 식물재배가  1944~)의 정원이 전세계적으로 화제다. 급격한 유행을 타지 않는 정원의 세계이지만 분명 트렌드(유행)는 있다. 18세기에는 영국에서 탄생한 자유로운 풍경의 연출인 영국식풍경정원(Landscape garden)이 전유럽을 휩쓸었고, 19세기와 20세기에는 영국 가든디자이너 거투르드 지킬(Gertrude Jekyll)의 화려한 초본식물의 화단정원이, 그리고 21세기는 지속가능성과 생태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초본식물화단’이 대세다. 한 세기 전의 거투르드식 초본식물화단과 비교해보면 이 새로운 초본식물화단의 가장 큰 특징은 식물의 주인공이 원예품종이 아니라 ‘갈대’와 같은 자생종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사실 20세기까지 갈대는 정원에서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온대성 기후지역의 산과 들에서 제멋대로 자라는 습성 탓에 잡초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 갈대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자생능력에 매료된 식물재배가가 나타난다. 바로 독일의 칼 포에스터(Karl Foester, 1874~1970)는 평생 동안 갈대를 ‘대자연 어머니의 머리카락’으로 칭하며 훌륭한 정원 식물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좀 더 관상적으로 아름다운 갈대 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개발시킨 갈대는 오늘날 ‘칼 푀스터 갈대’ 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식물이 되기도 했다. 그 당시 칼 푀스터 외에도 독일에서는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원예 재배가들이 자생종 식물의 품종 개발에 앞장을 섰고, 그 중에는 칼 푀스터의 친구인 어네스트 파겔(Ernst Pagels, 1913~2007)도 있다. 

훗날 독일에서 정원교육을 받은 네덜란드 출신의 미엔 루이스(Mien Ruys, 1904~1999)는 칼푀스터와 어네스트 파겔의 식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화단정원을 본격적으로 디자인한다. 미엔 루이스의 디자인은 유럽 정원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간결한 선과 기능이 살아 있는 공간의 구성은 모더니즘을 그대로 따른 듯 보이지만 이 안에 심어지는 식물의 구성을 갈대와 자생이 뛰어난 야생식물로 채워 이른바 인간에 의해 심어졌지만 결국 식물 스스로 살아가게 하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자생 식물디자인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미엔 루이스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이 앞서 언급한 피에트 우돌프다. 

몇 년 전 ‘하이라인’으로 불리는 뉴욕의 고가철도의 공원화 작업이 전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전체 프로젝트의 계획을 잡은 곳은 조경가 제임스 코너가 운영하는 필드 오퍼레이션이지만 여기에 식물 디자인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피에트 우돌프였다. 그는 땅이 아닌 공중의 철도길에서도 생존이 가능한 식물군을 찾아 수년 간 자료조사를 마쳤고,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식물을 그 자리에서 씨앗 발아시켜 공중에 뜬 철도 공간을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자연생태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식물디자인을 구사했다. 

유행은 단순히 흘러가버리는 한 때의 일시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면 전통이 되어 살아남는다. 아름다운 관상만을 찾으려 했던 정원이 이제는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이다. 이 유행과 경향이 어쩌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질 현상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삭막한 우리의 도시와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 숨 돌릴 수 있는 숨통의 공간이 되어 장수하기를 바란다. 

4년 전 150년 된 한옥 수리를 마친 후, 나 역시도 식물 스스로 자생을 할 수 있는 정원, 나와 더불어 자연의 생태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정원을 꿈꿨다. 4년이 지난 지금의 속초 정원은 수크령, 흰줄 무늬 억새, 보리사초, 은사초, 줄무늬 갈대가 사계절을 피고 지는 다년, 일년의 초본식물과 함께 하고 있다. 이 정원이 어떤 이에게는 ‘잡초랑 화초를 같이 키우는 정원’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정원에 수많은 나비와 벌이 찾아오고, 밤이면 특별한 울음소리로 수많은 풀벌레의 집이 되어주고 있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청개구리가 작은 돌확 속에서 살고, 겨울이면 먹을거리를 찾아 내려오는 족제비를 만나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1세기 생태식물디자인의 시작은 독일의 한 식물 재배가의 ‘갈대의 발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갈대의 발견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정원이 인간의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소통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변화된다면 분명 우리의 삶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래서 논두렁, 밭두렁의 식물 하나에도 자꾸 눈길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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