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9) 상트페테르부르크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9) 상트페테르부르크
  • 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10.05 11:19
  • 호수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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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된 넵스키 대로는 카잔 대성당 등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

 

세계 3대 박물관인 ‘예르미타시’ 입장하려 아침부터 관광객들 장사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구화된 도시… 스타벅스, 맥도널드 점포도 보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의 분수정원. 대궁전 아래쪽으로 64개의 분수가 뿜어대는 물이 계단을 따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260개 황금색 조각상이 시선을 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의 분수정원. 대궁전 아래쪽으로 64개의 분수가 뿜어대는 물이 계단을 따라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260개 황금색 조각상이 시선을 끈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800km 구간은 오토바이 여행하기에 멋진 코스​이다. 특히 비시니 볼로쵸크에 새로 들어선 고속도로는 2018년 월드컵 경기를 위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의 기존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이틀 동안 800km를 달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했다. 복잡한 도시에서 오토바이 운행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마침 비까지 내리니 낯선 도시의 신호 체계와 러시아워에 맞물려 도심의 거리는 여간 힘들지 않다. 

한인 민박집은 ‘마야콕스카야 역’으로 오면 된다는 전화를 받고 무작정 찾아 나섰다. 며칠 전 모스크바의 해프닝을 생각하며​ 일단 모스크바 역으로 갔다. 정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스크바 역’이라고 크게 붙어 있다. 러시아에서 역명은 가는 방향의 큰 도시 이름을 딴다. 즉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역’이란 뜻이 되는 것이다. ​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퇴근 시간 다운타운의 거리는 대단히 복잡하다. 길 가운데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경찰에게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보이고 방향을 물었다. 워낙 복잡한 시간이라 친절하게 안내할 수는 없을 게다. 손가락으로 로터리를 가리키며 ‘저쪽 길로 쭉 가서 첫 번째 네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라’는 뜻인 것 같다. 그래서 로터리를 쭉~ 따라가다 네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갔다. 그러나 역 같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지나가는 멋쟁이 아가씨에게 주소를 쑥 내밀었다. 그녀는 ‘뒤돌아 쭉 가서 왼쪽으로 가세요’라는 것 같은데, 어디서 왼쪽으로 가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알려준 아가씨도 답답해하다가 뭐라 뭐라 하고는 가버렸다. 그러나 가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주차장에 다녀온 것이다.

잠시 후 돌아와서 주소를 다시 보여 달라고 하더니 전화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좋다고 하니, 자기 핸드폰으로 민박집 사장과 통화를 해서 확실하게 위치를 확인하고 난 다음, 자기 차가 앞설 테니 뒤따라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민박집 앞까지 안내해 주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때 이국땅에서 길을 찾고 있는 한 늙은이의 모습이 그녀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나는 “You are a real angel(당신은 정녕 천사입니다)”이라고 인사했다. 정말 고마웠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넵스키 거리는 1700년대에 건설한 도시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이롭다. 직선대로의 길이는 4.5km, 인도의 폭은 서울 강남대로인도의 두 배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거리의 사람도 강남대로보다 많다. 건물들은 낡고 오래됐으나 아직 튼튼하고 거대하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다. 유럽이 여름 방학을 시작하면 학생들이 대거 몰려온다고 한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KFC, 미국계 호텔 등 거대 다국적기업은 이미 요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가장 빨리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발전한 유럽화 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대륙횡단 여행 중 주유소에서 주유 서비스를 처음으로 받아 본 곳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있다. 관광객이 많고 거리가 복잡하여 보이지 않는 위험도 있다. 

서울에서 온 한 관광객은 배낭 속의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 속에는 얼마간의 현금과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는데, 버스에서 소매치기가 슬쩍한 것이다. 유럽여행 중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거나 복잡한 거리에서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배낭에 넣은 물건은 언제 누가 가져갔는지 모른다. 핸드폰에 뜬 카드 사용 메시지를 보고서야 도난당한 것을 알게 된다. 이 한국인 관광객은 도착하고 하루만에 가진 것을 모두 털린 것이다. 민박집 사장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에서 도난 확인서를​ 받는데 1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민박집 사장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다음날 귀국해야만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예르미타시박물관이 있다. 이 예르미타시 박물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몇 일간 일정을 잡아야 할 만큼 규모와 소장 예술품이 방대하다.

예르미타시 박물관 입장을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다.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그러나 박물관에 들어서는 순간 보상받은 기분이 든다.

1764년에 기원을 둔 예르미타시 박물관에는 고대 이집트 유물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예술품을 골고루 300만점 이상 소장하고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 황제가 거하던 겨울 궁전을 비롯하여 4개의 건물을 연결해 운영하고 있다. 이 박물관 관람을 하루에 소화하기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보다 버스를 타거나 넵스키 대로를 천천히 걷는 게 좋다. 길 좌우에 있는 카잔 대성당과 그리스도 부활 피의 구원성당, 여름 궁전,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등을 돌아볼 수 있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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