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 풍등 때문인가… 전국 저유소 안전점검 철저히
고양 저유소 화재, 풍등 때문인가… 전국 저유소 안전점검 철저히
  • 이영주 기자
  • 승인 2018.10.12 13:52
  • 호수 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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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에서 큰 화재 및 폭발이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43억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 경찰은 외국인 노동자 A(27·스리랑카)씨가 날린 풍등(소형 열기구)이 화재 원인이라 발표하고, A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이를 두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안전시설 미비, 안전관리 위반 등 저유소 측의 잘못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화재는 7일 오전 10시 56분쯤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옥외탱크 14기중 하나인 휘발유 탱크에서 발생했다. 저유소에서 약 25㎞ 떨어진 서울 잠실 등에서도 검은 연기가 관측될 정도로 불길이 거셌다. 불은 탱크에 남아 있던 휘발유를 다른 탱크로 빼내는 작업과 진화작업을 병행한 끝에 17시간 만인 8일 오전 3시 58분께 완전히 꺼졌다. 

9일 경찰은 저유소 인근 터널공사장 근로자인 A씨가 공사장에서 날린 풍등의 불씨가 저유소 탱크 옆 잔디밭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보면, 풍등이 저유소 쪽으로 날아간 뒤 추락했고 4분 뒤 저유소 탱크 인근 잔디에서 연기가 났다. 이어 18분 후 탱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풍등에서 촉발된 불씨가 환기구를 통해 휘발유 탱크 내부로 들어가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A씨에게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한 만큼 단순 실화가 아닌 중실화죄를 적용시킨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기각했다. 중실화 혐의에 대한 소명과 인과관계 입증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의 구속영장이 검찰 단계에서 기각되면서 애초에 경찰 수사가 무리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A씨의 변호인은 석방 소식에 “당연한 결과”라며 “실수로 풍등을 날렸다가 불이 난 걸 가지고 외국인 노동자를 구속한다는 것은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도 1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부실 수사를 비판했다. 

여론은 저유소의 허술한 안전 관리 문제가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양저유소에는 탱크 외부의 화재를 감지하는 장치, 외부 불씨 유입을 막을 장치 등 화재 방지 시설이 없었다. 

모니터링 전담 인력이 없던 것도 문제다. 휘발유 탱크 폭발 전에 잔디가 타고 있는 것을 파악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유소 시설 관리 주체인 대한송유관공사는 잔디에 불이 붙은 지 18분이 지나도록 화재 발생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대형 기름 저장탱크 14개가 밀집된 곳에 잔디를 깔아 놓은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번 사고로 정부의 안전관리 제도에도 허점이 드러났다. 고양 저유소는 20개의 유류 저장 탱크가 있으며, 현재 14개 탱크에 7700만ℓ의 휘발유가 저장돼 있다. 고양 저유소와 같은 저유소는 전국에 8곳이 있는데, 판교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지정한 기준(1억5000만ℓ)에 못 미쳐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지 않았다. 국가중요시설로 지정되지 않다보니 11년마다 한번 외부 진단을 받으면 될 뿐이었다. 안전설비나 출입통제 등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저유소에 대한 안전시설 의무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풍등 제재, 외국인 노동자 대상 교육 강화 등의 필요성 또한 제기하고 있다.

반나절 이상 꺼지지 않는 검은 연기에 두려움을 떨었던 국민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 원인이 됐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이보다 충격적인 것은 위험 시설이 이토록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사 기관은 화재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화재 및 안전사고 예방 대책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저유소를 비롯한 화재에 취약한 각종 위험 시설물의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보완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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