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8]오래된 녹용, 약재로 괜찮을까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8]오래된 녹용, 약재로 괜찮을까
  • 김제명 경희미르한의원 분당점 대표 원장
  • 승인 2018.10.12 14:03
  • 호수 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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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명 경희미르한의원 분당점 대표 원장]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환자분께서 본인들이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오래 묵은 녹용을 가져오셔서 한약 지을 때 같이 넣어 달라고 하시거나, 본인이 달여 드셔도 좋은지 질문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럴 때 가져오신 녹용은 대부분 외국 여행 중에 사 온 것이거나, 지인들이 외국에서 사서 선물한 것들입니다.

한의원은 원칙적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증을 받은 제약 회사의 약재만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환자분이 직접 구매해서 가져온 녹용을 선뜻 탕약의 약재로 사용하는 것이 꺼림칙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부터의 글은 선물 받은 녹용을 집에서 직접 달여 먹는 경우를 가정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쟁점은 녹용을 어디서 사 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입니다. 예로부터 녹용이 귀한 약재로 널리 알려진 터라 귀하게 보관을 하신다고, 장롱 깊숙한 곳에 혹은 냉동실에 3년 이상을 보관하시다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한 경우 10년 이상 방치되었다가, 배우자와 사별 후, 유품을 정리하시다 발견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진 녹용을 원장실 책상 위에 올려놓으시고, 과연 어떤 판정을 내릴지 초조하게 한의사의 눈치를 살피십니다. 그렇지만 한의사들은 “너무 오래되어 약재로 쓸 수 없습니다”라는 냉정한 ‘사망 선고’를 내립니다. 가져오신 분이야 섭섭하시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판정입니다. 

몇 가지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첫 번째, 만약 환자분이 녹용 보약을 드시려고 큰맘 먹고 큰돈을 들여 한의원에 내원하셨는데, “3년이 지난 묵은 녹용으로 한약을 짓겠습니다”라고 하면 과연 그 한약을 기쁜 마음으로 드실까요?

두 번째, 맛있는 소고기를 잘 먹고 남은 것을 잘 보관한다는 생각에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깜빡해서 3년이 지났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 소고기는 냉동실에 보관된 덕택에 다행히 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3년 지난 고기를 꺼내 고깃국을 끓일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마도 그 고기를 버리시고 새로운 고기를 사실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우리가 논하는 것은 음식도 아니고, 약재입니다.

장롱 속의 녹용, 혹은 냉동실 속의 녹용은 굳이 기간을 정하자면, 2년이 지났다고 생각되면 버리시는 게 최선입니다. 녹용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성 약재인 사향, 웅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사향은 우황청심환의 원료일 뿐 아니라 최근에 각광받는 공진당의 원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요 성분인 향성분이 날아가기 때문에 신속히 처리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약재입니다. 한의원에서는 제약 회사를 통한 안전성 검사를 거친 약재만 사용하므로, 민간에서 식품 형태로 유통되거나 보관된 약재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약재를 집에서 직접 달여 드실 경우에는 잠정적으로 2년 이내에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이른 시일 내에 한의사와 상담하여 체질이나 환자의 상태, 증상에 맞게 활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 맑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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