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축제처럼 지내자
벌초를 축제처럼 지내자
  • 류성무 수필가 김천시가메실경로당 회장
  • 승인 2018.10.12 14:14
  • 호수 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성무 수필가 김천시가메실경로당 회장]

효에는 사전효(死前孝)와 사후효(死後孝)가 있다. 사전효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실천은 하지 못했더라도 누구나 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반면 사후효는 요새 들어서 점차 시들해지는 것 같다.

사후효는 시묘(侍墓) 3년이라고 해서 부모의 묘 옆에 움막을 지어놓고 3년 동안 사는 일을 말한다. 이후에는 방에다가 제사상을 차려놓고 바쁜 농사일에도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밥상을 올리고, 초하루와 보름에는 삭망(朔望)을 하며 제사를 올리는데 소상(小祥), 대상(大祥)으로 남상은 3년, 여상은 2년으로 탈상을 한다. 설‧추석 명절에는 차례를 올리고 돌아가신 날에는 자손들이 모여 기제(忌祭)를 올린다. 이는 4대봉사로 고조부까지 모신다.

그 외에도 비가 많이 오거나 장마철에는 선조의 묘를 돌아보면서 관리를 하고 한식에는 가토(加土)를, 매년 음력 8월초에는 벌초(伐草)를 한다.

특히 이 벌초문화가 예전과 달리 퇴행되고 있다. 자손들이 생업에 바쁜 핑계로 벌초꾼을 사서 하는데 묘 1기에 몇 년 전에는 5만원 하던 것이 해를 더해가면서 10만원, 올해엔 교통편이 안 좋은 곳은 15만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1년에 하루쯤은 시간을 할애해서 선조 묘에 자손들이 직접 풀을 베고 성묘 하는 것도 사후효다. 벌초꾼에게 많은 돈을 쓰는 행위는 성의부족으로 사후 불효라 해도 무방하다.

추석 때 차례를 지낼 때도 직접 지은 햅쌀로 송편을 만들어서 올려야 하는데 편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떡집에서 사는 게 당연시 되고 있다. 이 역시 정성이 배제된 무성의한 사후불효다.

지난 세월 부모님들이 굶주려가면서 허리끈을 졸라매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 놓았더니 각자 생업에 따라 흩어져 살면서 봉양은커녕 요양원 신세 아니면 독거노인으로 지내게 만들어 고독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이 결국 사후효 문화마저 퇴색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여러모로 궁리 끝에 아무리 어렵더라도 벌초날은 만사를 지쳐놓고 참석하기로 결의했다. 부모와 조상이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났겠는가. 효의본질인 숭조(崇祖) 사상을 새롭게 고취하고자 제례와 벌초는 남에게 맡기지 말고 직손들끼리 계(契)를 조직해 매월 적립을 하고 벌초날을 곗날로 정했다. 그 결과 벌초는 귀찮은 일이 아닌, 학교도 다니지 않은 손주들이 가장 손꼽는 가족 축제로 바뀌었다.

아무리 사회생활이 힘들어도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이에 대해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