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 전, 이어 붙이면 건물 3층 높이가 되는 대동여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 전, 이어 붙이면 건물 3층 높이가 되는 대동여지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0.12 14:48
  • 호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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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동국대지도’, ‘일본여도’ 등 조선시대 제작된 국내외 260여점 총망라

지역 인물과 역사적 사실까지 담은 ‘조선팔도고금총람도’ 등 눈길

조선시대 500여년간 제작된 지도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서 만들어진 지도를 총망라한 이번 전시에선 당시 지도제작 수준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500여년간 제작된 지도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서 만들어진 지도를 총망라한 이번 전시에선 당시 지도제작 수준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차승원 주연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조선의 진짜 지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김정호의 노력을 담아내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렇게 탄생한 대동여지도는 22개 첩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어붙이면 가로 3.8m, 세로 6.7m에 달한다. 이 지도를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3층 높이 이상의 공간에서 펼쳐야만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진짜 지도’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0월 28일까지 진행되는 ‘지도예찬-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전에서는 대동여지도를 포함해 ‘동국대지도’(보물 제1582호)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요 소장품과 ‘조선방역지도’(국보 제248호) 등 국내 20여 기관 및 개인 소장가의 중요 지도와 지리지 26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먼저 1부는 ‘공간’을 담은 지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세계를 담은 지도, 나라를 그린 지도, 경계와 외국을 그린 지도, 천문에 대한 지도를 소개한다. 

조선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속에서 문명의 계승자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으며, 서양 문명을 비롯한 다른 세계의 인식도 참고했다. 조선 초기 제작된 ‘조선방역지도’는 조선의 국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보물 제1537-1호), ‘일본여도’(보물 제481-4호) 등에선 경계 너머 외국의 사정을 살펴 국제정세를 파악하려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증강현실로 경기장을 수놓았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천문 지도들은 하늘의 이치를 이해하고 받들어, 아래로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자 했던 조선의 통치 이념을 반영한다.

이중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가 1710년경 만든 우리나라 전국지도인 ‘동국여지지도’를 눈여겨 볼만하다. 당시 크게 늘어난 지리 정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호를 사용했고, 지도의 우측 여백에 범례를 두어 기호를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게 제작했다. 범례는 현대식 지도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중요한 도구인데, 이 지도는 현존 지도 중 범례를 적용한 가장 이른 사례이다.

2부에선 ‘시간’을 담은 지도를 소개한다. 삶의 공간에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많은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다. 즉,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지도 위에 역사를 기록하는 전통이 생겼고, 조선지도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를 그린 지도인 ‘천하고금대총편람도’ 등에는 역대 왕조의 변천과 역사적 사건들이 함께 수록돼 있다. ‘경주읍내전도’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바라본 신라의 고도 경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김수홍이 현종 14년(1673년)에 만든 ‘조선팔도고금총람도’는 우리나라 전국의 지리 정보에 더해 각지의 주요 인물과 역사적 사실을 잘 담아내고 있다. 서울을 축척과 무관하게 강조해 상세 지리 정보를 부각시킨 지도로, 중요 정보를 기준으로 변형시킨 현대식 카토그램과 매우 비슷하다. 중요한 자연지명이나 인문지명을 기재하던 당시 관행에서 벗어나 해당 지역의 중요 인물을 선택해 기재했다. 예를 들어 한산도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곳이라는 설명을 담았다.

3부에서는 ‘인간’을 담아낸 지도를 다룬다. 조선 지도에는 인간 사회의 다양한 소망과 가치가 반영돼 있다. 통치를 잘 하려는 바람, 국방을 튼튼히 해서 국토를 지키려는 바람, 태평성대를 추구하는 바람 등 당시 조선 사회의 다양한 이상들이 드러난다. ‘청구관해방총도’(보물 제1582호) 등의 국방지도나 ‘평양성도’, ‘전라도 무장현도’ 의 회화식 지도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지도를 널리 사용하게 되면서 등장한 작은 크기의 ‘수진본 지도’나 ‘명당도’ 등의 풍수 지도는 일상에서 사용된 지도의 실례를 잘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대표 지도 제작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지도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소개한다. 양난(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전쟁 피해 극복 과정에서 많은 지도가 필요해 행정 및 국방용 지도, 도시 지도, 휴대용 지도, 조상 무덤 위치를 그린 산도(山圖) 등 다양한 지도가 제작됐다. 정확성과 상세함을 겸비한 대축척 방안 지도도 이때 등장했다. 

조선 전기 지도의 기틀을 마련한 정척과 양성지, 양난 후 관찬 지도를 발전시킨 비변사, 18세기 ‘동국대지도’를 만들어 대형 전국지도를 크게 개선한 정상기, 영조의 명을 받아 세밀하고 아름다운 관찬 지도인 ‘청구도’(보물 제1594호)를 완성한 신경준, 이용자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조선 지도학을 집대성한 김정호 등 GPS 같은 장비 없이도 놀랍도록 정확한 지도를 만들었던 제작자들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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