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박정희 前대통령 ⑥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박정희 前대통령 ⑥
  • super
  • 승인 2006.08.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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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1000달러 꿈이던 시대 경제발전 토대 닦아

본지는 우리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데 주목하여 은퇴한 노인으로서 겪는(은) 일상의 작은 행복과 세월의 무상함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지면을 마련했습니다. 공과 과가 있겠으나 어차피 전직 대통령들은 역사입니다. 따라서 정치적 편향성 없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선의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간적인 관심사와 삶의 즐거움, 건강생활, 원로로서의 자리 등을 살펴보고 건강 노년, 문화노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획 취재팀〉


박정희 대통령 집권 말기 청와대의 입 역할을 했던 김성진 문화공보부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이 조기 퇴임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고 어느 책에서 회고한 적이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나도 좀 편히 쉬면서 애들 시집장가나 보내도록 해야겠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기에 퇴임을 하겠다고 했던 것은 후계문제 때문이었다. 제9대 대통령 임기만료 1년쯤 앞둔 1983년 어느 시기에 물러남으로써 국정공백 없이 다음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빈자리가 자연스럽게 채워지고 조정된다고 보았다.


왜 박정희 대통령이 하야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국가경제 발전의 소임을 다한 대통령으로서 아름답게 물러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한 것이나 ‘애들 시집장가나 보내고…’운운했던 것으로 보아 오랜 집권 피로감도 있었던 듯하다.

 

미군철수, 인권문제 등을 들먹이며 압박하던 미국과 갈등을 겪는 가운데 국내 정치마저 불안하여 당시 집권자로서의 피로감이 컸으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자 위안이었던 육영수 여사의 부재가 집권 후반기의 박 대통령이 하야할 생각을 하게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조기하야 계획대로 됐다면 어떤 기자는 “육 여사 생존시 박정희 대통령의 고독은 의욕의 원천이 되었으나 육 여사 사후의 박정희 대통령의 고독은 외로움과 고통으로 작용한 듯하다”고 어느 책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권좌에서 물러나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며 쉬고 싶다’고 한 것도 결국은 그런 외로움의 한 표현이었던 셈이다. 물론 임기 전 하야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구상대로 되었다면 아마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나 강택민 중국 전 주석 등 외국의 성공한 지도자들처럼 박정희 대통령 나름의 방식으로 아직 생존해 있을 것이다. 1917년생이므로 우리 나이로 지금 90세. 한국의 대통령들이 대개 장수하는 것으로 보아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그렇다고 쇳덩이처럼 강한 것만도 아니었다. 앓기도 했다. 중요한 국사를 결정할 때 10~20일 동안 회의하고 사색하는 등 주야로 골몰해서 그 때마다 주치의의 치료를 받을 만큼 십이지장 염증이나 궤양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회고에 의하면 아파도 안 아픈 느낌이 들만큼가슴 뿌듯한 기쁜 일도 많았다.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면서 기상에서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아파트 단지, 아름다운 농촌주택, 크고 작은 공장들이나 다목적 댐, 방조제, 간척지 등을 내려다보고는 마치 자신의 재산, 소유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는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국가가 부자 되는 것을 그렇게 기뻐했으면서도 박정희 대통령 스스로는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사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생활은 검소한 것이 아니라 빈한하다 할만 했다.

 

최근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오래된 잠바를 입고 현장시찰에 나섰다 하여 중국인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내공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청와대 집무실서 파리채 들고 살아

 

김정렴 비서실장의 회고에 의하면, 최고 권력자였을까 싶게 서민적인 삶을 산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이 평소 물욕이 없고 재산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그 한 예가 청와대 집무실에서 박 대통령이 파리채를 손에 들고 있었다는 얘기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집무실의 에어컨을 틀지 않고 늘 유리 창문을 열어놓고 지냈고, 그 때문에 밖에서 파리들이 날아 들어와 파리채로 잡거나 쫓아야 했던 것이라고 한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서 일상생활에서 호화 외제품으로 사치할 수도 있었으나, 박 대통령은 늘 국산품을 애용했다. 일상용품 중에서 선물로 받은 넥타이, 만년필, 전기면도기 등 세 가지를 빼고 나머지 양복이나 외투, 내의 구두 등 모든 것을 국산품으로 썼다.


술도 국산, 즉 막걸리를 즐겼다. 양주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술과 관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에피소드는 거의 막걸리 이야기다. 경기도 원당에 대놓고 찾던 술도가가 있었기도 했다.

 

고 건 전 총리도 특별 보자관단이나 비서관들이 회식을 할 때는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 바와 같이, 원당의 ‘배다리 술도가’는 청와대에 평소에는 일주일에 2말 정도,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10말 정도씩 술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막걸리를 낼 수 없는 국빈 만찬에서는 국산 포도주 마주앙을 이용했고, 한식으로 접대할 때는 적포도주 대신 경주법주를 주로 이용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한 이발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증언하여 알려진 러닝셔츠와 허리띠 이야기도 박정희 대통령의 검소한 삶의 단면을 잘 알게 해준다. 낡아 목 부분이 헤져 있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난 러닝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고 한다.

 

허리띠는 몇 십 년을 사용했는지 두세 겹 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구멍은 늘어나 연필 자루가 들어갈 정도였다는 것이다. 60~70년대에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일으킨 우리나라 보편적인 노년세대가 살던 그런 생활인의 모습으로 살았다.


또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알려진 얘기로 욕실 변기 속의 벽돌 이야기가 있다. 청와대에 들어가 보니 물을 아끼기 위해 벽돌을 넣어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IMF 시절, 물자절약의 한 아이디어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데에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

 

잘살아보세, 세계 3~4위의 장수국가 기틀

 

최근 중국에서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배워갔다는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말 ‘새마을’을 한자 그대로 중국에서는 신촌(新村)이라고 쓰고 있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는 ‘잘살아보세’ 말 그대로 물질적으로 가난을 추방하고 잘 살자, 풍요롭게 살자는 뜻이었다. 직접 노래를 작사·작곡하여 온국민과 함께 주문을 외우듯이, 혹은 기도문을 외우듯이 노래하며 염원했다.


하지만 그 꿈을 자신의 대에서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포항제철, 고속도로, 울산공업단지, 목포군선, 간척지, 대덕연구단지… 헬 수 없는 국가적 역사를 일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도 되지 않던 시대에 이뤄놓고 갔다.

 

오늘날 일인당 국민소득 1만 5000달러, 마이카 시대, 세계 10대 교역국, 세계 제 2위의 외환보유국… 생존해 있다면 꿈같은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세계 3~4위의 장수국가가 되었다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함께  고생을 하며 나라 경제를 일으켰던 그 주역들이 세계에서 장수하는 사람들 축에 든다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헤진 러닝셔츠를 입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보릿고개를 넘어왔으면서도 그 사이 섭생이 양호하여 ‘웰빙’ 했던 덕분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게 있어 역사는 1979년 10월 26일까지 뿐이다. 육영수 여사 사후, 박 대통령이 지었던 시 한편을 인용한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산천초목도 슬퍼하던 날/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겨레의 물결이 온 장안을 뒤덮고/전국 방방곡곡에 모여서 빌었다오/가신 님 막을 길 없으니/부디부디 잘 가오/편안히 가시오/영생 극락하시어/그토록 사랑하시던/이 겨레를 지켜주소서… 하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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