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2) 노인과 캠프장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2) 노인과 캠프장
  • 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10.26 11:17
  • 호수 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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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노인들, 캠프장에서 수다 떨고 즐기며 외로움 잊는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덴마크로 건너오니 산이 없어 단조로운 해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

캠프장엔 장·노년층 많아… 3개월째 캐러밴 빌려 지내는 노부부도

덴마크에서 시니어 캠핑족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캠핑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노년층이 꽤 많은데, 캠핑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수다를 떨고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긴다.
네덜란드의 캠핑족을 위한 캐빈(오두막)의 모습. 유럽에는 숲속이나 공원, 도심, 농장, 바닷가 등 어디에도 캠프장이 널려 있다. 여유 있는 50~60대들은 캠핑카를 가지고 오거나 고급 캐러밴을 임대하고, 가난한 사람은 캐빈을 빌린다.

캄캄한 밤중에 항공기로 노르웨이에서 덴마크로 건너왔다. 덴마크는 입헌군주국으로 인구는 558만 명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4655달러(2014년 기준)이다. 우리나라에서 14억불 수출하고 9억불 수입한다. 고복지 국가로서 국가예산의 3분의 1이 사회복지에 쓰인다. 그린란드, 패로 제도를 자치령으로 가지고 있다. 

깊은 밤도 아닌데 가로등도 안개 속에 잠겨 무색하다.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속은 나그네를 당황하게 한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부두에서 길을 물을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머릿속에 지도를 떠올리며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캠프장을 찾아 나섰다.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깬다. 어렵잖게 캠프장을 찾았으나 접수처에는 아무도 없고 문이 잠겨 있다. 안개 속에서 위치를 분별할 수 없어 화장실 불빛이 가까운 곳에 텐트를 설치하고 샤워장으로 갔다. 더운물 샤워를 24시간 할 수 있으나 동전을 넣어야 한다. 동전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여행자는 섬세하게 동전도 챙겨 다녀야 한다. 바람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어느새 콧노래가 나온다. 

다음 날 아침 안개가 걷혀 시야가 좋다. 청명한 날씨에 바닷바람도 상쾌하다. 캠프장은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는 넓은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 나무 한 포기 없이 삭막했다. 황량한 야영지는 우주 공간의 어느 동네 같기도 하다. 10여 대의 캠핑카 그리고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주황색 텐트 옆에 오토바이가 지키고 서 있다. 개를 데리고 아침 조깅을 하는 젊은 여인에게 눈인사로 사진 한 장 찍었다. 지평선과 해안선이 하늘과 마주치는 무한의 빛이 가물가물하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서면 누구나 동화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훌훌 벗어 던지고 완전 알몸으로 해변을 걷는 저 여인을 보라, 자유로운 영혼의 극치를 느껴보라.

북해는 모래도 차고 바닷물도 차가워

태평양과 북해는 어떻게 다를까. 대서양의 여름은 모래가 차갑고 바닷물이 따뜻하다. 우리나라 동해와 완전 반대다. 북해는 어떨까. 발을 담가 보니 모래도 차고 바닷물도 차갑다. ​덴마크의 해안 풍경은 단조롭다. 아마 산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검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세고, 산이 없는 나라의 해안선은 간결하고 바다 빛도 단호한 느낌이다. 단순한 자연의 풍경을 보고​ 마음의 위안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복잡한 사회환경 속에서 살아온 탓일 게다. 

유럽은 캠핑 천국이다. 각양각색의 캠프장이 즐비하다. 국가기관이나 공익단체 또는 마을 커뮤니티, 개인 사업장으로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캠프장이 있어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공짜부터 텐트 한 자리에 75달러까지 받는 곳도 있다. 산골 숲속, 공원, 도심, 농장, 바닷가 어디에도 캠프장은 있다. 유럽은 고령 사회로 노동력이 부족해,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과수원이나 포도밭 농사는 일손을 수입해서 짓는다. 

공원, 도심, 바닷가 어딜 가나 캠프장

사과밭을 캠프장으로 꾸며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과일향기 그윽한 사과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그늘 아래 기다란 널빤지 의자에 누워서 한가롭게 소설책 한 권 들고 휴가를 보내는 유럽 사람들. 독일의 드레스덴 근교 캠프장에서 만난 노인 부부가 대표적이다. 할아버지는 그늘에 해먹을 치고 누워서 독서를 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옆에서 온종일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에서 캠프장은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의 캠프장에는 젊은이가 별로 없다. 주류가 50대에서 60대 사이 중년층 가족이고, 다음은 60대 후반 노인이다. 이들은 캠핑카를 가지고 오거나 캠프장에 붙박이로 있는 럭셔리 캐러밴을 임대하고, 가난한 사람은 캐빈을 빌린다. 젊은이들은 우선 경제력이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간혹 1인용 텐트가 있으면 이것은 젊은이가 자전거 여행하는 것이다. 젊은이가 캠프장에서 한가롭게 놀 여유가 없기도 하다. 도시와 관광지 중심의 배낭여행은 젊은이 차지다. 이들은 하룻밤 자고 떠나는 공동숙소를 찾는다. 

노인은 어디서나 외롭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려 나가고 노부부가 집에 우두커니 있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유럽은 우리보다 더 외롭다고 한다. 그래서 휴가철이면 집을 몇 달씩 세놓거나 비워두고 캠프장으로 나온다. 덴마크 캠프장에서 만난 65세의 한 부부는 3개월째 캐러밴을 빌려서 살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노인은 장기간 임대해 휴가철을 보낸다. 

캠프장의 특성은 모두가 여행 또는 휴가 중이라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일상이라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 수 있다. 캠프장의 구성원은 매일 나가고, 새로운 여행자가 들어온다. 그래서 캠프장에는 매일 새로운 이슈가 생기고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캠프장의 노인들은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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