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나이 드는 법
나답게 나이 드는 법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18.10.26 11:34
  • 호수 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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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노년기 이런저런 조언 많지만

자기 형편에 맞게 선택하면 돼

가까운 가족, 친구들 챙기면서

각박하지 않게 베풀며 살면

행복한 노년이 되지 않을까

삶은 한 번뿐인데, 사는 모습은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어차피 나이 드는 것은 모두 예외 없이 가야하는 길이지만 어떻게 늙어 가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너무 위대하고 훌륭하게 산 사람들의 인생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겐 따라 하기도 부담스럽지만, 나의 속도대로 차근차근 걸어가는 이 삶도 잘 하였다 칭찬받을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가는 지혜에 대해 여러 사람이 조언한다. 예금 잔고를 챙겨라, 근육잔고를 위해서는 운동해라, 집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밖으로 나가라, 사람들과 어울려라, 잘 노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습하라, 나이 들 수록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라, 이것을 먹어라 저것을 먹지 마라. 과연 이 모든 조언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나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이란 자기의 형편과 성격과 상황에 맞게 해나가는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생김이 각양각색이듯이 살아가는 모양도, 패턴도, 태도도 다르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말에 얇은 귀 기울이지 말고 가장 나답게 나이 드는 법을 각자 연구하자.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남들처럼 따라 하다가 자칫 관절이 상하거나, 족저근막염에 걸리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사람들과 많이 만나야 한다고 해서 관련된 모임마다 찾아다니다가는 오히려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면 심리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타입이라 여러 모임을 쫓아다니다 보면 체력도 에너지도 다 고갈되고 만다.

재산도 많고 적고를 떠나 자신의 철학에 따라 관리하면 된다. 가지고 있던 재산을 일찌감치 처분해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후엔 집도 은행 잔고도 아무것도 없이 나라에서 주는 보장들을 알뜰히 챙기는 사람도 있다. 기초연금, 노령연금, 국민연금 등등을.

그런가 하면 ‘그래도 세상 떠나기 전까지 내 것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가 가는 게 자식들에게도 떳떳하고 든든하지 않겠는가’하고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내가 멘토로 모시며 잘 알고 지낸 멋쟁이 여성 경영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폭넓고, 모임도, 사교 활동도 무척 많은 분이셔서 어느 날 이렇게 여쭈었다. 

 “늘 많이 바쁘시죠?”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예상 밖이다.

 “아니, 이젠 그리 바쁘게 지내지 않아요. 아는 사람, 반가운 사람만 만나기에도 내게 남은 시간이 짧아!” 

이젠 좋은 사람하고 지내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남 좋으라고 반갑지도 않은 모임에 억지로 나갈 생각은 없다는 말씀이었다. 한참 활동하던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60대이신 그 여성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바쁜 것도, 바빠지지 않는 것도 다 선택하는 거구나. 그럴 수 있구나. 그래도 괜찮구나.’

살면서 불편한 것은 버려야지 억지로 끌고 가면 오히려 다른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인간관계도, 나쁜 습관도, 오래된 앙금 같은 씻을 수 없는 감정도, 후회도 미련도 원망도. 이젠 버려도 누가 탓하지 않을 만큼 나이 들지 않았는가?

한참 젊을 땐 앞날이 확실치 않아서, 다른 이의 맘이 내 맘 같지 않아 분노했다. 나이 드는 일이란 그런 분노가 없어지는 것일 게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 게 많아졌다. 남과 같이 크게 성공하지 못했어도, 큰 재산을 모으지 못했어도 아무렇지 않고, 주름이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오래 입어 낡은 코트를 걸쳐도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지나고 남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 그리고 그 관계이다. 한 원로목사님은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구하는 일 같은 큰 비전은 이제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다. 내 가족을 살피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잘 돌보는 작은 비전이 가장 위대한 일이라 하셨다. 평생을 조각가로 대성한 최만린 선생도 일생 후회 없이 일했던 예술가였지만 인생후반에 느끼는 아쉬움은 조랑조랑 자녀들이 어렸을 때 시간을 좀 더 내주지 못한 것이라 말했다. 

각자의 처한 형편대로 나이 들어 간다 하여도 적어도 이것만은 마음에 두었으면 좋겠다. 너무 각박하지 말았으면, 그리고 각자가 진정 행복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조금 넉넉하게 베풀고 남을 위해 살아도 갑자기 빈곤해지지는 않는다. 이제 인생 짐을 싸고 떠날 때를 앞두고는 주머니 끈이 조금 넉넉하고 헐거웠으면 좋겠다. 100세를 사신 김형석 선생님은 ‘이제 내가 나를 위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씀하시며 이타적인 삶을 강조하신다.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는 미국 동부 볼티모어에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92세까지 살았다. ‘불평하고 슬퍼하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아요’라고 말하며 매순간 꽃과 나무와 강아지와 그림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았다. 

노년이여 부디 평안하자, 부디 행복하자, 부디 기뻐하자. 그렇게 나답게 나이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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